악몽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어. 어김없이 악몽을 꿨고 울었고 잠에서 깼어.
이럴 땐 내가 혼자인 게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져.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설령 그게 너라고 해도 나조차 왜 우는지 모르는데 너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만약 누군가 내게 “너 지금 어디 있어?”라고 물어보면 “난 지금 미얀마에 있어!”라고 바로 대답 하겠지만 신체적인 나와는 다르게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또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면 난 ‘여기’란 표현 대신 ‘저기’ 혹은 ‘어딘가에’라고 대답해야 할 거야.
띠보 붉은용호텔에서 잠든 나와 꿈속에서 우는 나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듯해. 하지만 불교에서는 ‘심신일여(心身一如)’라 해서 몸과 마음을 구분하지 않아. 즉 내 몸이 여기 있으면 마음도 여기 있는 것이고, 내가 내 몸을 볼 수 있다면 내 마음도 볼 수 있는 게 돼.
지금 난 침대에 누워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고 이불 밖으로 나온 내 발끝을 보고, 또 글을 적어내려가는 내 손을 봐. 내 마음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악몽을 꾸고 여행 절반을 울면서 깨는 이유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겠지. 하지만 난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어.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으면 좋겠어. 나도 이 극장꿈이 지긋지긋해. 그래서 몸을 정말 피곤하게 만들어서 잠들어도 봤고, 자위도 해봤고, 만달레이에선 타이레놀 3알을 먹고 잠들기도 해봤어. 하지만 이렇게 노력한 날엔 더더욱 선명한 꿈을 꾸게 돼. 난 정말로 궁금해. 도대체 내 몸 어디에서 이 악몽이 상영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상영되는 걸까?
그래도 오늘 아침이 다른 날과 다른 게 있다면 평소엔 당연하게 받아들인 이 악몽에 대해 “왜?”라고 묻기 시작했다는 거야. 어쨌든 이건 '내 꿈'이고 그렇다면 분명 내 안에 있을 테니까. 난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날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