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여행_띠보(Hsipaw) 김장풍경_2

인심(人心)

by 박원진
%EA%B2%BD%ED%95%84%EB%88%84%EB%82%98.jpg?type=w966 경필이 누나와 아줌마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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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웃'이란 단어는 따뜻한 어감으로 읽히고 발음되지만 이건 전적으로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이웃은 실체가 없거나 혹은 있다해도 다가가기 힘든 대상에 가깝다. 그럴 만도 한 게 자취를 시작한 이후 이웃 중 서로의 이름을 부를 만큼 친해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엔 많은 이름이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살던 경필이 아줌마네(경필이 누나는 늘 빨간색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공부 잘하는 형이 있던 재민이네, 미용실을 하던 영빈이네(영빈이는 싸움을 잘했고 나도 몇 번 맞았다), 불량식품을 많이 팔던 희아네 가게, 4자매 중 막내 둘은 쌍둥이던 안나네 집까지. 모두가 나와 동갑인 건 아니었지만 그런 호칭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지금도 이들의 집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데 집안뿐 아니라 아파트를 올라가던 계단의 먼지 냄새, 복도 타일의 무늬(오래 보면 눈 코 입을 찾아 얼굴을 만들 수 있었다), 집마다 다른 온기, 녹색 현관문 너머로 들리던 친구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다. 아마도 그들 역시 우리 집을 어떤 모습으로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이웃을 기억하는 방식은 이름이나 공간의 분위기가 아니라 몇 층 몇 호에 사는지, 평수와 월세가 얼마인지,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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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서울과 띠보의 삶이 다른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히 여행자의 입장에서 느꼈던 가장 큰 차이는 ‘공동 공간’의 유무였다. 띠보의 집은 건물은 낡았으나 집을 구성하는 터가 넓다. 터가 넓다는 건 ‘여유 공간'이 있다는 뜻으로 그 공간을 통해 사람의 왕래가 가능해진다. 즉 누구네 틀, 누구네 마당 같은 곳을 열어 둠으로써, 그곳에서 마을 주민이 모여 김장을 담그고,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하고, 나 같은 여행자도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주차장이 됐거나 땅주인에 의해 담이 세워졌을 공간이다. 자본주의사회에 익숙한 이에게 무언가를 ‘같이’소유한다는 개념은 낯설다. 8세대가 모여사는 우리 연립주택만 해도 공동 공간의 개념은 없고 그럴만한 자리도 없다. 오히려 반 평도 안되는 쓰레기 버리는 장소로 다툼이 있고, 나만 해도 옥탑방을 계약할 때 다른 주민이 올라오는지를 확인했다. 많이 소유함으로 더 큰 인정을 받는 사회에서, 내 것과 내 영역을 지키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며 그러기에 ‘같이’의 개념은 뒤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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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띠보의 삶이 서울의 삶보다 나은 걸까?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찍은 사진 속 인물 대부분은 밝게 웃고 있지만 이 안에서도 서로 좋아하는 사람과 싫은 사람이 있을 테다. 누구와는 얼굴도 마주치기 싫지만 마을 주민이 모두 참여하는 행사이니 어쩔 수 없이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 우리 집만 해도 명절 때면 최소 30명의 친척이 모였는데 그렇게 많은 이들이 뒤섞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났다. 평생 안 볼 것처럼 싸우는 형제도 있었고, 매 명절마다 서럽게 우는 고모도 계셨다. 또 누구는 소식도 없이 재혼을 하여 새로운 사람의 손을 잡고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남으로서 신기한 일도 일어났다. 친척 중에 가족 여럿을 등쳐먹은 사기꾼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매년 "그 사기꾼 새끼 오늘 또 나타나면 손모가지를 부러뜨린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막상 만나고 나면 서로 절도 하고 덕담도 주고받았다. 원수처럼 싸우던 형제도 몇 시간이 지나면 같은 상에서 떡국을 퍼먹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어린 자녀끼리는 더없이 친했다. 상을 다 치우고 나면 지친 어머니들은 안방에 모여 몇은 눕고 몇은 맥주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고, 거실에선 늦게까지 화투패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밤이 되면 각자 챙겨온 과일이며 영양제, 해외에서 사 왔다는 옷가지 등을 나눠가졌고, 잠이 든 아이들은 세뱃돈이 든 봉투를 안은 채 부모 등에 업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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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겪었던 명절의 모습은 현재의 띠보의 삶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여기엔 마주함(만남)으로 인한 불편함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개인화된 한국의 삶은 편안할까? 모두가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인터넷 창을 띄워보면 수많은 갈등이 초 단위로 올라온다. 젊은 세대와 구세대가 편을 갈랐고, 그 세대 안에서 부자와 가난한 이가 맞서며, 다시 또 그 안에서 성별이 나뉜다. 여기에 종교, 이념, 지역 갈등까지 더해지며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는 걸 넘어 혐오와 조롱이 이어진다. 상대에게 등을 돌린 채 무시나 비하로 일관하며 ‘불편하다'라는 글을 적는 건 역설적이게도 아주 편한 일이다. 내 눈앞에서 혐오가 담긴 말을 하는 사람은 1년에 한 번 볼까말까이지만 인터넷에선 매일 본다. 이런 글 대부분은 각자의 방 안에서 작성되며, 밖으로 나와 이야기될 때도 있지만 이는 같은 뜻을 가진 집단의 모임에서다. 즉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불편함은 마주 보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마주 본다고 해서 이런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세상엔 그런 극적인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은 원래 자기가 옳은 법이다. 그저 나와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눈앞에서 봐보니 그 역시도 사람이었구나를 확인하는 정도다. 운이 좋다면 나와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도 있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게 지금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명절 때면 우시던 고모 옆엔 늘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 고모도 그래서 더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달래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내 마음을 조금 내주고 상대방 마음을 조금 얻는 것뿐이다. 난 그게 ‘인심(人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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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정확히 ‘김치'라는 음식이 아니라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가 등재된 것이다. ‘판소리’ 나 '남사당놀이’ 같은 무형유산은 전승자 혹은 주최자가 있는 반면 ‘김장문화'는 김치를 담가 나눠먹는 국민 누구나 인류무형유산에 해당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여행 때만 해도 한국에 돌아가면 주택의 주민을 모아 옥상에서 김장을 담가보겠단 계획을 세웠지만 돌아와선 당연하다듯 흐지부지됐다. 대신 같은 건물에 사는 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친절히 인사를 했는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며 인사를 받는 사람과 안 받는 사람이 나눠졌고 받지 않는 사람에겐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바뀐 것도 있다. 내 택배를 대신 받아준 1층 아줌마에게 귤 한 봉지를 사다 드린 걸 시작으로 우린 가끔 음식을 나눠 먹는다. 여름날 종종 옥상에 올라오시는 주인아저씨껜 몇 번 아이스크림을 드렸는데 이제는 많이 친해져서 한 번 올라오시면 최소 30분은 수다를 떨고 가신다. 이에 따른 귀찮은 일도 있다. 아저씨는 늘 호야(강아지)와 같이 올라오시는데 옥상에 똥을 누는 일이 잦고 한 번은 집 안으로 들어와 하모(나와 같이 사는 고양이) 사료를 먹고 도망가기도 했다. 역시나 같이 사는 건 편한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여기서 오는 기쁨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내 호칭에 있는데 아저씨는 얼마 전까지도 날 ‘옥탑’이라 부르셨지만 친해진 뒤로는 ‘박형’이라 부르신다. 난 이 호칭이 참 웃기고 어색하지만 ‘옥탑'이란 호칭보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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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이 촬영이 가능했던 건 모두 이 분 덕분이다. 샨족 출신인 그녀는 마을주민 중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했고 그 덕에 여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여행자인 날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집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시며 사진 찍는 걸 도와주셨다. 노트에 이 분 이름을 적어놓기를 ‘에히’라고 써놨는데 돌아와 샨족 이름을 찾아보니 비슷한 게 없어서 난감하다. 아마 애칭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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