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편지

긴 잠

by 박원진

6시 45분, 보트 기사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선착장에 도착했어. 사실 이 지역은 보트 댈 수 있는 곳은 모두 선착장이라 정확히는 보트 기사의 집 앞 호숫가야.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낭쉐에 사는 많은 이들은 자기 보트를 가지고 있어. 이들은 어릴 때부터 보트 운전하는 법과 낚시하는 법을 배운다고 해.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춰 살게 되는 거지. 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과하다 싶게 두툼한 옷을 입고 걸어오셨어. 뒤로는 아내와 어린아이 둘이 잠옷 차림으로 따라 나왔고. 아저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한 명씩 차례대로 껴안아 줬는데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안심이 됐어. 어쨌든 오늘 하루는 그와 한 배를 탄 사이고 이왕이면 다정한 사람이 좋으니까. 이 아저씨를 만나기까지 조금 과장해서 50명 정도의 보트 삐끼와 기사를 만났는데 나중엔 같은 사람을 또 만나기도 했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음식점을 가도 보트 투어 삐끼가 있고, 심지어 숙소에도 찾아와 호객행위를 해. 이러다간 정말 못 고르겠다 싶어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정했어.

첫째로는 ‘꽁야'를 하지 않을 것. 이건 입담배랑 비슷한데 약한 환각작용이 있어. 아마 미얀마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봤다면 남자들이 핏물 비슷한 걸 뱉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거야. 이걸 과하게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약에 취한 듯 눈이 풀려있는데 그런 사람과 호수 한복판에 단 둘이 있을 순 없으니까, 이 기준만 해도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 두 번째는 '인데인 마을'까지 갈 것. 이 마을은 호수 끝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천 개가 넘는 석탑이 펼쳐져 있는 걸로 유명해. 난 돈을 더 내더라도 인데인 마을까지 가는 보트를 원했어. 마지막으로는 사진 찍을 시간을 충분히 줄 것. 이렇게 고르고 고른 분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잉와이’란 이름의 보트 기사야.


보트 위는 몹시 추웠어. 호숫가의 아침 기온은 낮았고 보트의 빠른 속도까지 더해지니 더 춥게 느껴졌어. 그제야 잉와이가 왜 혹한기 훈련에 나갈 법한 복장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됐지. 좁은 강 길을 따라 쭉 달리다 보면 ‘인레호수'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판이 보였고 이어서 넓은 호수가 펼쳐졌어. 여행자들을 태운 수십대의 보트가 이 순간 넓은 호수로 쫙 퍼지는데 보트에 탄 사람들은 하나같이 추워서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

이때까지만 해도 난 정신이 멍했어. 어제 거의 잠을 자지 못했거든. 여행에 와서 악몽을 꾸는 날은 많아도 잠을 못 자는 거의 날은 없었는데, 어젠 날씨부터 시작해(원래 비가 온다고 했었거든) 어떻게 사진을 찍을지, 렌즈는 뭘 가져갈지, 배터리는 완충됐는지 같은 걱정이 쌓이고 쌓이다가 선잠만 겨우 들었어. 신기한 게 이렇게 다른 생각에 몰두하게 되면 극장 꿈을 안 꾸게 돼. (실제로 띠보에서 첫날을 마지막으로 극장 꿈을 꾸지 않고 있어) 그렇게 멍한 상태로 있다가 나도 모르게 “우와!”를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 정말 한마디면 됐어. “우와!”

인레 호수는 마치 커다란 거울 같았어. 막 푸른빛을 띄기 시작한 하늘은 호수 표면 위로 그대로 반사돼서 하늘색이 곧 호수 색이었고, 하늘에 구름이 떠있으면 호수 위에도 떠있었어. 보트가 그 구름 위로 지나가면 파랗고 흰 물결이 생선 비닐처럼 반짝거리며 빛났어. 먼 곳을 바라보면 호수와 하늘의 경계가 희미했고 보트는 계속 그 희미한 곳을 향해 달려갔어. 추위를 잊을 만큼 아름다웠고 난 그때서야 잠에서 깨는 느낌이 들었어.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잉와이가 갑자기 보트를 멈춰 세웠는데 내가 "왜 멈춰요?”라고 물으니 그는 우리가 온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Good”이라고 짧게 말했어. 난 앞만 보고 가느라 뒤쪽 풍경을 못 봤는데 그는 그걸 보여주고 싶었나 봐. 난 그가 가리킨 방향의 사진을 찍으며 그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


사실 이후의 보트 투어는 '패키지여행'과 비슷했어. 모닝 마켓을 시작으로 은세공 공장, 실크 공장, 담배 공장 등을 무조건 방문해야 했는데 난 공장의 물건보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눈이 갔어. 더구나 이 날은 미얀마의 독립기념일 전날이라 방문하는 곳마다 축제 분위기였고 모두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어. 공장에 도착하면 다른 보트 기사들은 휴게소에 모여 수다를 떠는 반면 잉와이는 매 장소마다 날 졸졸 따라다녔는데, 내가 물건을 사길 바라는 마음에 이러나 싶어서 물어보니 단순히 나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어. 그는 내가 자기가 처음으로 만난 ‘포토그래퍼’라고 했어. '난 아직 포토그래퍼가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웃어넘기며 "난 네가 인레에서 만난 50번째 보트 기사야."라고 대답했어. 그 말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이, 정말 내 직업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했어.


사실 이 생각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어. 잠이 많은 나를 새벽같이 일어나게 하고, 사교성이라고는 아예 없는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게도 해. 때로는 누군가를 찍기 위해 비굴해지기도 해. 보통은 한 번 거절당하면 바로 돌아서지만 너무 좋은 장면 앞에 서면 그게 안될 때가 있거든. 그게 안될 때- 비굴하게라도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을 때- 내가 이 일을 좋아하고 있구나 느끼게 돼. 하지만 한 편으론 여전히 두려워. 괜한 일을 또 벌려서 실패라는 마침표를 하나 더 찍게 되는 건 아닐까 싶고. 게다가 서울로 돌아가면 이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 답답해져. 이건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인데 이 일이 좋아지면서 요즘은 자주 이 생각을 하게 돼. 결국 직업이 되려면 돈이 따라와야 하니까. 잉와이는 이런 내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공장에 들어갈 때마다 나를 한국에서 온 포토그래퍼라며 소개한 뒤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하게 시켰어. 잉와이가 그렇게 설쳐대고 나면 공장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직돼서 어색한 포즈를 취했는데, 난 이 사진을 못쓸 걸 예감하면서도 잉와이가 점점 좋아졌어.


그렇게 5개의 공장 투어를 끝내고 다시 한참 동안 배를 타고 인데인 마을에 도착했어. 그곳에서 잉와이와 같이 점심을 먹은 뒤, 그는 보트에서 낮잠을 자기로 했고 난 석탑이 있는 마을로 올라갔어. 하지만 막상 파고다에 도착하니 딱히 볼 게 없었어. 이곳에 오려고 투어 금액의 반 정도를 더 냈는데 금액에 비해 너무 아쉬웠지. 탑들은 거의 다 부서져 있었고 또 탑까지 가는 길까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탑 쪽엔 아무도 없어서 난 몇 장의 사진만 찍고 내려왔어. 마음이 초조해진 건 이때부터였어.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 난 좋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거든. 하지만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고 난 엊그제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았어. 이제 남은 거라곤 돌아가는 길에 찍을 호수 사진뿐이었고, 불안해진 난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셔터를 누르면서도 마음의 초조함은 사라지지 않았어.


고맙게도 내가 무작정 셔터를 누르며 무리한 걸 요구할 때도 잉와이는 내게 잘 맞춰줬어. 보트를 멈춰달라고 하면 멈춰줬고, 어느 방향으로 더 다가가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줬어.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어부들 몇이 고기를 잡으러 나왔고, 난 그중 한 어부에게 계속 더 다가가 달라고 부탁했어. 노을이 지는 타이밍은 원래 내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시간대였지만 이 순간엔 오히려 해가 진다는 게 화가 났어. 내게 더 이상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마음속의 화는 점점 더 날카로워져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오기도 했어. 그러면서도 뷰파인더에 눈을 붙인 채 사진을 찍었지만. 아마 이 순간의 내 모습은 수영이 넌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어떤 일에 실패해 본 적이 있거나, 나처럼 마음에 상처가 나고 일그러진 부분이 있는 사람은 알지도 몰라. 두려운 거거든. 그리고 그 두려움을 어떻게든 표현해서 해소하려는 거고, 어린아이 같이.

그렇게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난 뒤로 넘어졌고, 그때서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난 우리 배와 고기잡이 배가 부딪혔다는 걸 알았어. 어부 아저씨는 잉와이와 짧게 이야기를 나눈 뒤 배를 살피더니 이상 없는 걸 확인한 후 떠났고, 잉와이는 내게 괜찮냐고 물으며 미안하다고 했어. 사실 이건 그가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었어. 계속 "더 가까이"를 외친 건 나였으니까.

고기잡이 배가 떠나는 쪽 호수로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고, 난 그 아름다운 빛을 바라보면서도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했어.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거든. 네게 편지를 쓰는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지만 이 순간엔 그저 더 이상 사진을 찍으면 안 되겠다 싶었고, 노을이 다 지고 어두워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어.

아마 그 순간 내가 몇 번의 셔터를 더 눌렀다면 더 아름다운 장면을 찍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사진이 좋다한들 욕을 하면서, 화를 내면서, 지금 내 눈앞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찍은 사진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언제부터인가 나와 사진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거야. 사실 이건 결과물이 좋을 때 시작된 감정인데, 좋을 사진을 찍고 나면 왠지 나도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어. 그래서 더 열심히 찍었던 것 같아. 하지만 반대로 그러지 못할 땐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였고, 아까처럼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화가 나기도 했어. 그렇다면- '나와 사진을 분리시키고 나면 나는 뭐가 되는 걸까?' 이 질문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질문으로 연결이 됐는데 '나와 영화를 분리시키고 나면 난 어떤 사람인 걸까?’였어. 이 물음은 참 막막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스스로를 '실패한 영화인'으로 부르지 않아도 될 질문이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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