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는 방향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환경에 영향을 받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회사원과 종일 흙을 밝고 서있는 농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피부의 빛깔부터 시작해 주로 짓는 표정, 옷차림, 일에 따른 주름과 근육도 달라. 이곳 ‘낭쉐'에 사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야. 사실 이곳에 오기전까지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호수처럼 편안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새벽 5시에 버스에서 내려 잠도 덜 깬 나에게 제일 먼저 말을 시킨 건 '보트 삐끼'였으니까. 이건 관광지의 숙명이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장소엔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있고, 사람들이 몰린다는 건 돈이 돈다는 뜻이기도 해.
낭쉐는 원래 인레 호수를 중심으로 어업과 밭농사가 발달한 곳이었지만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자연스레 숙박업과 음식점, 보트 투어 같은 서비스업이 주가 됐어. 당연히 지역주민들도 거기에 맞는 모습을 하게 됐고. 길거리를 걸으면 10초에 한 번씩 '보트 삐기'를 만나게 되는데, 미얀마에서 가장 능글맞은 사람들을 선발해 5미터 간격으로 세워둔 것처럼 하나같이 느끼한 미소로 접근해서 보트 값을 흥정해. 한국 돈으로 대략 2~3만 원이면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보트를 빌릴 수 있는데 미얀마인들의 하루 평균 임금이 3000원 미만인 걸 감안하면 엄청 큰돈이지. 나도 이곳에 보트 투어를 하러 왔으니 이런 상황에 뭐라 할 입장은 못 돼. 다만 내가 찍기 좋아하는 맑은 미소의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는 아쉬움이 있어.
하지만 호수가 있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내가 원래 봐왔던 미소의 미얀마인들이 있어. 다정한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네 주시지. 그래서 난 어제부터 계속 자전거를 타고 남쪽을 여행하고 있어. 남쪽은 특히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곳이 많은데 아주 넓은 사탕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이런 수수밭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데 멀리선 여러색깔의 점처럼 보이다가 한참 자전거를 타고 가까이 다가가면 어김없이 예쁘게 웃고 계셔. 난 이들의 사진을 찍었어.
오늘은 특별히 여행을 같이 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만난 건 막다른 길에서였어. 사진을 찍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밭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버렸고 결국엔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다녀야 했어. 처음 들어왔던 곳을 찾지 못하니 점점 길을 잃게 됐는데 그러다가 멀리 밭 끝 쪽에 2층 집을 보이길래 집이 있으면 당연히 출구도 있겠지 싶어서 그 쪽으로 갔어. 그리고 거기에 이 아이들이 있었어. 한 명은 2층 창문에서 날 내려다봤고 두명은 집 앞에서 놀고 있었어.
아이들은 내가 자전거를 끌고 자기 집을 지나가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No!”라고 외쳤어. 내가 “What?"이라고 되묻자 손가락으로 X 표시를 하며 이쪽에 길이 없다고 알려줬어. 난 이미 너무 많이 헤매서 지쳐있었는데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자기들끼리 웃으며 뭐라 얘기를 하더니 먼저 2층에 있는 애가 노래를 선창했어. 미얀마 말이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날 놀리는 노래란 건 알 수 있었어. 한국식으로 하면 "길 없는데~ 길 없는데~ 바보래요~ 바보래요~” 이런 식이었거든. 왜 동네마다 바보형 하나씩 있잖아. 딱 그 형에게 불러줄 법한 노래였어.
좀 성질이 났지만 여기서 화내는 것도 우습고 어쨌든 이쪽 방향엔 길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돌아서 나가는데, 얼마 안가 뒤에서 노랫소리가 다시 들리는 거야. 이 자식들 너무하네 싶어서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은 다음 뒤를 확 돌아봤는데, 아까 2층에 있던 애가 내 표정이 조금도 무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다가와선 이 길이 아니니 자길 따라오라고 했어.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바보형과 꼬마 셋이 같이 걷게 됐어. 가는 길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는데 논밭은 가로지르는 건 기본이고 사람 한 명이 겨우 건널법한 좁은 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했어. 아이들은 내가 자전거를 들고 안전하게 건널 때까지 지켜보다가(좀 부담됐어) 내가 건넌 걸 확인한 다음에야 다시 앞장서서 걸었어.
좁은 길이 나오면 한 명씩 나란히 걸었고, 자전거가 얕은 도랑에 빠지면 아이들은 또 일렬로 멈춰서 키득키득 웃으며 날 바라봤어. 겨우 자전거를 끌어올리자 아이들은 아까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렀는데, 나도 이제 자포자기해서 그래 '실컷 불러라' 하는 심정이었어. 더 이상 그 노래가 기분 나쁘지도 않았고. 이렇게 일렬로 걷고 있으니 우리가 마치 '브라멘 음악대'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딱 4명이기도 했고. 가만 보니 맨 앞에 목소리가 제일 큰 애는 수탉을 닮았고, 가장 어린애는 강아지, 여자아이는 고양이 같았어. 난 두말 할 것 없이 당나귀고. 그렇게 걸으면서 브라멘 음악대가 ‘해피엔딩'이었나? 기억이 안 나 떠올려보다가 문득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구나 싶었어.
아이들의 생기찬 걸음걸이와 진한 햇살, 땀이 마르며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의 감촉, 옆으로는 푸른 논밭이 부드럽게 흔들렸고 자전거는 아이들 노래에 박자를 맞추듯 한 바퀴 구를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냈어. 가능하다면 난 지금 이 순간을 예쁘게 오려서 배낭이건, 주머니 건, 내 기억 속이건 어디든 늘 가지고 다니고 싶었어. 앞에 '행복한 기억'이라고 크게 써서 말이야.
큰 길에 도착해서 아이들과 헤어질 땐 과자라도 사주고 싶어서 슈퍼에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아이들은 급구 괜찮다고 했어. 떠날 때도 이렇게 예쁜 표정을 지어줬는데 둘 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어.
이 아이들을 포함해 오늘도 많은 사진을 찍었어. 돌이켜보면 여행 초반엔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겠단 생각은 아예 없었거든. 그저 카메라를 가져왔으니 찍은 거였지. 하지만 이제는 내일을 준비할 때, '내일은 어디로 갈까'가 아니라 '내일은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이게 잘하는 건지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어떤 일에 몰입하는 느낌이 좋아. 사진을 찍다 보면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누군지 완전히 잊혀지는 순간이 있거든.
어제 내가 편지로 누군가를 찍으면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셔터를 눌러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 하는 건 방향을 바꾸면 그 인물이 정말 달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은 뒷모습이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기도 해. 나라는 사람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 나도 요 몇 년간 스스로를 '실패한 영화인’으로 불러왔지만 어쩌면 그건 한쪽 방향에서만 본 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늘 처음으로 해 봐. 만약 각도를 조금 틀면 나라는 사람도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내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내가 있는 환경이 변했기 때문일 아닐까 싶어. 그렇게 생각하니 여행을 떠나오건 참 잘 한 일 같아.
내일은 드디어 배를 타고 호수로 나갈 예정이야. 이곳엔 이미 유명한 사진작가가 많이 다녀갔고, 플리커나 인스타그램에도 인레 호수의 좋은 사진이 넘쳐나기 때문에 난 조금 긴장이 돼. 난 진심으로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사진을 찍고 싶거든. 그게 어려운 일인 건 알지만 그럼에도 한 번 해봐야지 싶은 기분이 들어. 내가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다녀와서 다시 편지를 쓸게.
보고싶은 친구 수영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