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괜찮아

by 박원진

비행기가 뜨는 순간 잠들어서 착륙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어.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도 똑같이 비행기를 타고 양곤에 가고 있더라. 가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숨을 못 쉬겠는 거야. 내가 헉헉거리고 있으니까 승무원이 와서 날 안스럽게 쳐다보더니 비행기 창문을 열어줬어. 손바닥 두 개 만한 창문을 여니까 연한 파란색 하늘이 보였고, 비행기 속도와는 상관없이 바람이 참 부드러웠어. 심지어 바람에도 파란 색깔이 느껴졌어. 그제서야 다시 숨이 트이고 호흡도 원래대로 돌아오더라. 한참 동안 그렇게 바람을 맞고 가다가 누군가 깨워서 잠에서 깼어. 일어나보니 비행기는 양곤에 도착해있더라.

너야 워낙 여행을 많이 다니니 미얀마도 가본 곳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해.
하지만 나한테 보낸 사진 중에 미얀마 사진은 없었고, 그러니까 난 네가 이 나라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며 편지를 쓸게.
그리고 네가 해줬던 것처럼 나도 네가 좋아할 만한 풍경이나 사람들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서 편지에 같이 부칠게.
네가 좋아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넌 아마 내가 왜 수많은 나라 중에서 미얀마에 왔는지 궁금할 거야. 그 얘기는 차차 적을게.
오늘은 우선 차이나타운 쪽에 숙소를 잡고 하루종일 걸어 다녔어. 목적지 없이 다녔음에도, 하루 동안 본 크고 작은 파고다만 5개가 넘어. 여기는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라고 해. 상상이 되니? 한나라의 인구 대부분이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게 나로선 정말 신기한 일이야. 그중 한 파고다에서 있었던 일을 너한테 얘기하고 싶어.

너도 알다시피 난 종교가 없고 또 종교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도 있어. 오히려 거부감이 없는 건 너였지. 넌 자주 종교가 순기능만 한다면 가치 있는 거라고 얘기했잖아. 여행을 오기 전 내가 한 일을 그 거부감을 없애는 일이었어. 쉽게 쓰인 불교책을 찾아 읽고, 쉬는 날엔 박물관에서 가서 불교 관련 미술을 봤어. 다른 준비보다 종교에 집중한 건 너랑 떠났던 인도여행의 경험 때문이야. 그땐 힌두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아마 네가 옆에서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인도는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남았을테니까.
불교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생기고 나니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게 다르게 와 닿더라. 종교에 대한 극진한 예의로 느껴졌어. 맨발로 성전을 딛는 느낌은 어떤 걸까. 신의 몸 혹은 마음에 내 살결이 닿는 기분일까. 혹시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저 그곳을 걷는걸로 만족하려고 했어. 내겐 이 모든 게 신비스럽게 느껴졌거든. 근데 파고다에 도착해 입구에서 본 장면은 전혀 다른 의미의 신비였고 충격이었어.

넌 이 사진이 어떻게 보이니?
처음엔 테러가 난 줄 알았어. 저 사람들은 기절하거나 죽은 거라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어.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걸 보고 나서야 자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내가 기대했던 ‘신성함'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어.
파고다 안은 더 충격적이었어. 자는 사람은 양반이고, 가족끼리 돗자리를 피고 앉아 도시락을 먹고, 다 먹고 난 다음엔 담배도 피우더라. 구석엔 남녀가 부둥켜안은 채 키스를 하고(그래도 신에 대한 예의인지 우산으로 가리더라.)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럴 거면 신발은 왜 벗어?”

이런 식의 믿음이라면 90%의 수치가 그리 놀랍지 않더라. 사실 종교를 갖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돈이 많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학벌이 있어야 하는 것도, 시험을 쳐야 하는 일도 아니지. 솔직히 이곳은 ‘성전’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았어. 오히려 ‘시장’이나 ‘놀이공원'이라 부르는 게 나아 보였어.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신기해서 거의 3시간 동안 사원을 10바퀴 정도 돌았던 것 같아.
그렇게 걷다 보니 기이해 보였던 장면 사이로 경건하게 기도를 하는 사람, 엄마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아이, 내가 있는 내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참선을 하는 스님이 보이더라. 이 순간 내가 널 떠올렸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내가 인도에서 그렇게 투덜거릴 때마다(사실 서울에서도 투덜거렸지만) 네가 말했잖아.
단점은 쉽게 보이지만 장점은 찾아야 하는 거라고.
그땐 이해를 못 했는데 살면서 네 말이 맞다는 걸 자주 느끼게 돼.

너한테 소개하고픈 할아버지가 계셔.
멋지시지? 분명히 너였어도 이 할아버지 사진을 찍었으리라 생각해.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스타일이잖아. 특히 저 모잔 정말 멋졌어.
처음 이 할아버지 사진을 찍을 때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손으로 막는 거야. 실례했구나 싶어서 “죄송합니다.” 하니까 할아버지는 칠판을 가리키면서 “이건 곧 지울거니까 새 걸 찍어.” 라고 하시며 뒤에 새 칠판을 보여주셨어.
설명을 들어보니 이 칠판은 신도들이 소원을 빌면서 기부를 하면 이름을 적어주는 것 같았어. 내가 옆에 서서 오랫동안 구경을 하니까 할아버지는 나한테 “너도 소원 하나 빌어.”라고 하셨어. 근데 그 순간 뭘 빌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더라. 그래서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오케이, 오케이” 하셨고.

사원을 몇 바퀴 더 돌면서 어떤 소원을 빌까 생각해봤는데 정말 모르겠더라. 떠오르는 건 많았거든. 근데 그게 정말 간절한지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요.” 였어. 결국 소원이라는 게 어떤 목표가 있을 때 생기는 거잖아. 근데 난 그게 사라진 지 오래됐어.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더 좋은 카메라도 사고 싶고, 예쁘고 마음이 통하는 여자친구도 만나고 싶지만, 다시 한번 그게 간절하냐 물으면 난 “이뤄지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고 대답할 거야.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아 다시 그 노인 앞에 왔어.
이번에 내가 물어봤어. 다른 사람들은 보통 어떤 소원을 비냐고. 둘 다 영어가 짧으니 대화가 잘 이뤄지진 않았지만, 단어들로 추측해보면 좋은 집, 아이를 낳고 싶다, 가족의 건강, 가게번창 같은 소원이었어. 내가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할아버지는 다시 “And you?” 하셨어.
나는 없다고 대답했어.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괜찮아.”라고 하셨고. 딱히 더 할 말이 없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사원 밖으로 나왔어.

양곤 시내를 걸으며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어. 이 도시는 무척 뜨거워. 빈 골목이 없어. 어느 곳을 걷건 활기 넘치고, 사람들 몸은 활짝 열려서 본래 신체보다 더 크게 보여. 왜 어느 도시에 가면 마치 병든 사람들만 모아둔 것처럼 축 처지고, 눈에 초점도 없고 그런 곳이 있잖아. 근데 양곤은 모두 가슴에 용 한마리씩을 품은 것처럼 활기찬 곳이었어. 이런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낯설게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낯설게 보이더라.
시장 상인의 큰 목소리, 고기를 자르는 정육점 주인의 팔뚝, 국수 한 움큼을 입에 넣는 아저씨, 어깨 위로 커다란 짐을 올린 사람들 틈을 지나면서 오히려 내 자신이 낮설고 더 솔직한 표현으로 초라해 보였어.
그러면서 마음 한 편에선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곧 내가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 또 한 편으로는 몇 년 동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아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어.


숙소 쪽으로 걷다 보니 강이 나왔고 마침 노을이 질 시간이었어. 여러 대의 배 위로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올라타서 누군가는 양곤을 떠났고 누군가는 양곤으로 돌아왔어. 강물에 하루가 다 담겨 있는 것 같더라. 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이 모여 강물이 이뤄진 것 같았고, 또 많은 기도가 모여 저런 빛의 노을이 되는 게 아닐까. 이 순간 내가- 얼마나 강으로 뛰어들고 싶었는지 몰라. 왠지 그러면 나도 이 분위기에 섞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하지만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지. 그래도 고마웠던 건 저 노을 빛이 나만 빼놓고 비추는 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나도 같이 비춰줬다는 거야. 정말 고마웠어.

수영아. 내가 소원이 없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무엇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니야. 다만 내게 간절했던 걸 얻지 못하게 된 뒤로 다시 새로운 무엇을 소망하는 게 두려워. 그리고 난 더는 두려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나로선 이게 현재를 가장 안전하게 사는 방법이야. 내가 그어놓은 빗금 안에서 사는 게. 근데 아까 봤던 노을은 내가 그어놓은 빗금이 상관없다는 듯 비추는 것 같았어. 강도 건물도 사람도 나도 상관없다 듯이. 쓰다보니 너무 판타지 같아서 나에겐 어울리지 않은 순간처럼 느껴지네.
수영아. 네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너도 아까 그 할아버지처럼 나한테 "괜찮아"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오늘 노을을 보면서 계속한 말도 “괜찮아.”였으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