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벗고들어오세요
수영아. 나는 어젯밤 버스를 타고 만달레이로 넘어왔어.
이곳은 양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양곤이 붉은 기운이 도는 활기찬 도시였다면 만달레이는 보다 안정된 느낌이야.
도시 대부분이 원고지의 정사각형처럼 명확하게 구획되어있고, 건물들은 그 네모 칸 안에 쓰인 반듯한 글씨처럼 칸에 딱 맞춰 들어가 있어.
아시아 국가에서 이런 사각형 패턴의 도시가 있다는 건 이곳이 서양의 식민통치를 받았다는 뜻이겠지. 우리는 이런 식으로 도시를 구성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이건 사람의 편리와 자연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의 문제인 것 같아. 이곳엔 양곤에서 봤던 것보다 크고 깨끗한 백화점이 있고, 명품까진 아니어도 고가의 브랜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 하지만 그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 원고지가 아닌 무지 노트에 쓰인듯한 다양한 필체의 사람과 집을 볼 수 있어.
오늘 내가 하려는 얘기도 이 무지 노트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서야. 이들에 관해 설명하려면 우선 노트를 가로질러 기찻길을 그려야 할 거야. 그리고 그 기차길 양옆에 집을 그려 넣으면 되겠지. 집의 모양은 하나같이 다 다르지만 거의 대나무 짚을 엮어 만들었어. 여름엔 시원해도 비가 오면 막막하겠지? 어떤 집은 옆으로 완전히 기울어져서 저 안에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하고, 어떤 집은 집 한가운데 큰 나무가 올라와 있어. 사람들은 이곳을 ‘무허가 주택지대’라 부르기도 하고 또 ‘기찻길 옆 사람들’이라 부르기도 해. 난 ‘기찻길 옆 사람들'이라 부르는 걸 더 좋아해.
내가 이 마을에 방문한 건 이곳에서 일하는 유치원 선생님을 알게 돼서야. SNS를 통해 알던 분인데 내가 아이들 사진을 찍고 싶다 연락을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허락해주셨어. 이 유치원은 기독교에서 운영하는데 찾아보니 만달레이뿐 아니라 미얀마 여러 곳에 한국선교단체가 들어와 있더라. 마침 날짜가 크리스마스와 겹쳐서 예수님 생일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게 됐어.
인구의 90%가 불교도인 나라에 기독교 유치원이니 종교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지. 난 이런 식의 선교가 옳은 걸까에 대해 고민해. 이곳은 앞서 말한 원고지에서 벗어난 곳이고 그래서 사는 이들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거든.
선교사들은 이곳으로 한 손엔 ‘종교’ 다른 손엔 ‘자본'을 들고 들어와. 결국 이는 방식에 문제야. 만약 이들이 자본 없이 순수하게 종교 자체로 접근했다면 지금처럼 포교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또 반대로 전도 없이 그저 자본을 내어줄 순 없는 걸까? 네 말대로 종교가 정말 순수하다면 그럴 수 있어야겠지. 하지만 한 편으로는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와선 매 끼니를 먹을 수 있고 심지어 간식도 줘. 또 가정에서 받을 수 없던 양질의 교육도 받을 수 있어. 굶은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배움이 어려운 환경에 놓인 이들을 가르치는 건 가치 있는 일이잖아. 예수님과 부처님이 하셨던 일이기도하고.
사실 대한민국이야말로 이런 식의 선교를 통해 기독교가 정착했고, 현재의 유명한 학교 중 선교사들이 세운 곳도 많잖아. 그로 인한 장점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다고 생각해. 여행을 하다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의 원래 종교는 뭐야?"라고 물을때가 있거든. 그때마다 마땅히 대답할 게 없어. 커다란(다수가 믿는) 종교가 자리 잡으면서 원래 있던 것들은 무속이나 미신이 됐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것들을 무속으로 치부하는 게 옳을 걸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게 130년 전이고 불교는 1600년 전이야. 그렇다면 그전에 이 땅에 있던 종교는 어디로 간 걸까? 종교란 게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건데 과연 누가 진짜와 가짜를 판단할 수 있는 걸까? 과학이? 철학이? 난 결국 '다수'의 힘이라고 생각해. 과거엔 지금 무속이라 부르는 게 다수였을테고.
생각이 많을 땐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니- 우선 유치원을 찾아갔어. 근데 여기서도 신발을 벗어야 하더라. 아이들이 잔뜩 모인 곳이니 이곳이 성전이고 천국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며 신발을 벗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