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크리스마스
수영아.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은 벽이 없어. 그 말은 친해지기 쉽다는 뜻이기도 하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방 와서 안기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날 대해. 가끔 예쁜 사람들을 보며 빛이 난다고 말하잖아. 난 아이들을 볼 때 그걸 느껴. 어쩜 저렇게 빛이 날까, 어떻게 저런 빛깔을 가지고 있을까. 아이들이 그렇게 빛날 수 있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때문일 거야.
그러니까 벽이 없다는 건 아직 뭔가를 숨길 필요나 자신이 숨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이곳 아이들 역시 순간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얼굴과 몸짓에 담아서 보여줘. 행복하면 그 행복이 직접 눈에 보이고, 신나면 그 신남이 온몸을 덮고, 심통이 났으면 그 심통을 가감 없이 드러내. 그런 까닭인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잘 달래지지도 않더라. 게다가 왜 다른 아이들까지 따라서 우는지! 한 공간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우는 걸 몇십 분 동안 지켜보고 있으니 오기전까지 하던 종교에 대한 고민이 좀 우습게 느껴지더라. 이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아이를 일단 달래고 보는 문제였어.
이곳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있어. 나름 잘 꾸미고 사랑받은 티가 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어떤 아이는 오랫동안 씻지 못해서 온몸에 피부병이 번져있기도 했고,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있는 아이, 가족의 방관으로 며칠 동안 굶고 있는 걸 이곳 선생님이 찾아가 먹인 아이도 있어. 벽이 없는 만큼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겠지.
한국에서의 교육은 외국어를 배우거나 적성을 살리는 일이잖아. 근데 이곳에서의 교육은 일단 끼니를 해결하는 거야.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밥을 먹을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란 걸 가르쳐야 하지. 우리로선 이게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을 찍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돼. 이 모든 사정을 전해 듣고 셔터를 누를 때- 눈앞에 있는 아이들은 천사같이 예쁘지만, 너무 예뻐서 내가 사진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단 생각도 들어. 내 프레임을 벗어난 곳엔 상처가 있고 난 그걸 다 담아내진 못하니까. 이건 내 문제이기도 하고 이 아이들이 그런 사정을 갖고 있음에도 너무 예쁜 탓이기도 해. 어쩌면 내가 그걸 피해서 찍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 이 카메라의 뷰 파인더에도 내 나름의 벽을 세워놓고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표현이 미안하지만 이곳엔 나처럼 어색하게 웃는 아이도 있어. 그 뜻은 벌써 벽을 쌓는 법을 알았다는 거지.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으면 저 어린 나이에 자신을 감추고 보호하는 법을 익힌 걸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고 있을 때 그 아이는 울지 않았어. 아마 지금은 울 상황이 아니란 걸 알고 있거나- 울음을 참는 법을 배웠거나-겠지. 말을 할 때도 조용히 얘기했고, 내게 먼저 다가와서 매달리기보단 한두 걸음 떨어져서 날 쳐다봤어.
수영아. 내가 가진 상처는 내가 실패했기 때문이고,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난 단 한 번도 누굴 탓한 적은 없어. 항상 날 탓하지. 하지만 지금 저 아이는 그렇지 않잖아.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뭘 얼마나 잘못했겠어.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그 아이에게 계속 눈이 갔어. 뭘 해주고 싶은데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
크리스마스 행사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었어. 얼굴에 오색 분장을 했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이 와서 사진도 찍어줬어. 난 혹시 그 아이도 부모님이 오시나 지켜봤는데 계속 혼자 있더라. 그리고 연극이 시작됐어. 예수님이 태어나고 동방박사가 마구간으로 찾아오는 이야기였는데, 연기를 잘하는 아이도 있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 또 전부 꽝인 아이도 있었어. 다양한 필체로 쓰인 글씨였고 그 글씨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되기도 했어. 예를 들어 아이들은 연극이 끝난 뒤 다 같이 이렇게 외쳤어.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예수님도 부처님도 이곳에 계셨으면 좋겠다 싶었어.
아마 두 분 중 누가 됐건 이 모습을 보며 기뻐하셨을 거고 또 껴안고 위로해주셨을 거야. 처음 이곳에 오면서 했던 선교에 대한 고민은 내가 멀리서 지켜볼 때나 할 수 있는 생각 놀음이었던 것 같아. 네 말대로 ‘종교’자체는 순수해. 이미 그 단어안엔 ‘사랑’이 포함되어있지. ‘자본’ 역시 마찬가지로 돈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진 않잖아. 그걸 쓰는 사람, 쓰는 방식이 문제를 만들지. 결국 종교건 자본이건 그게 누구 손에 들려있냐의 문제 같아. 이곳에 이틀간 방문하며, 선생님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혼잣말은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였어. 그래서 난 이분들이 존경받아야 하고 또 신성한 분들이라 느껴. 행사가 끝난 다음엔 유치원에서 준비한 도시락과 생필품을 나눠줬어. 멀리서 지켜보니 그 아이도 받아 가더라. 난 집에 가는 그 아이를 불러서 초콜릿이랑 이것저것을 꺼내 내밀었어. 아이는 처음엔 쭈뼛쭈뼛하더니 곧 받아서 주머니에 넣으며 어색하게 웃더라. 원래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예쁘게 잘 자라.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꼬옥 안아줬어. 당연히 내 말을 못 알아들을 테지만- 그러고 싶었어. 나야 잠깐 왔다가는 사람이니까 이러는 게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난 그 아이가 짧은 순간순간이라도 사랑받는 감정이 뭔지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야. 이곳에 들어올 때 신발을 벗은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