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노트에 사는 사람들

세 번째 편지

by 박원진

수영아. 나는 어젯밤 버스를 타고 만달레이(Mandalay)로 넘어왔어.ᅠ이곳은 양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 양곤이 붉은 기운이 도는 활기찬 도시였다면 만달레이는 좀 더 차분한 느낌이야.ᅠ

도시 대부분이 원고지의 정사각형 칸처럼 명확하게 구획이 나뉘어 있고, 건물들은 그 칸 안에 쓰인 반듯한 글씨처럼 딱 맞춰 들어가 있어.ᅠ아시아 국가인데 이렇게 사각형 패턴의 도시가 있다는 건 서양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해. 동양인들은 이런 식으로 도시를 구성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이것은 사람의 편리와 자연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 하는 문제일 거야. 이곳 숙소 근처에는 큰 마트와 백화점이 있어. 두 곳 모두 명품까진 아니어도 좋은 브랜드가 입점해 있고. 하지만 그곳에서 불과 몇백 미터 안으로 들어가면 원고지 대신 ‘무지(無地) 노트’에 쓰인 듯 다양한 필체의 사람과 집을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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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려는 얘기도 이 무지 노트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서야. 그들에 관해 설명하려면 우선 노트를 가로지르는 기찻길부터 그려야 해. 그리고 그 기찻길 양옆에 각기 다른 모양의 집을 그려 넣으면 되겠지. 집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 대나무 짚을 엮어 만들었어. 시원하긴 해도 비가 오면 막막하겠지? 어떤 집은 옆으로 완전히 기울어져서 사람이 산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또 어떤 집은 집 안 한가운데 큰 나무가 올라와 있기도 하고. 사람들은 이곳을 ‘무허가 주택지대’ 또는 ‘기찻길 옆 사람들’이라 불러. 나는 ‘기찻길 옆 사람들’이라 부르는 걸 더 좋아해.ᅠ

이 마을을 방문한 건 SNS를 통해 이곳 유치원 선생님을 알게 돼서야. 내가 아이들 사진을 찍고 싶다며 연락을 드렸더니 고맙게도 허락해 주셨어. 이 유치원은 한국의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야. 찾아보니 만달레이뿐 아니라 미얀마 여러 곳에 한국 선교 단체가 들어와 있더라. 마침 날짜가 크리스마스와 겹쳐서 예수님 생일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게 됐어.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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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90퍼센트가 불교도인 나라에 기독교 유치원이라니, 종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지. 과연 이런 식의 선교가 옳은 걸까. 이곳은 앞서 말한 대로 원고지에서 벗어난 곳이야. 그래서 주민 대부분이 가난해.ᅠ선교사들은 이런 곳에 한 손엔 ‘종교’, 다른 손엔 ‘자본’을 들고 들어와.ᅠ만약 그들이 자본 없이 순수하게 종교 자체로 접근했다면 지금처럼 포교할 수 있었을까? 또 반대로 종교 없이 그저 자본을 내어줄 순 없는 걸까? 종교가 정말 순수하다면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순기능도 있어.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하던 아이들이 유치원에 오면 매 끼니를 먹을 수 있고, 심지어 간식도 나와. 또 가정에서 받을 수 없던 양질의 교육도 받을 수 있어.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배움이 필요한 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건 가치 있는 일이잖아. 예수님과 부처님이 하셨던 일이기도 하고.ᅠ

사실 우리나라야말로 이런 식의 선교를 통해 기독교가 정착한 곳이지. 현재의 유명한 학교 중 선교사들이 세운 곳도 많고. 그로 인한 장점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다고 생각해. 이를테면 기존의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라든가. 여행을 하다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의 원래 종교는 뭐야?”라고 물을 때가 있거든. 그때마다 마땅히 대답할 게 없어. 다수가 믿는 종교가 자리 잡으면서 원래 있던 것들은 무속이나 미신으로 밀려났으니까.

생각이 많을 때는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우선 유치원을 찾아갔어. 그런데 여기서도 신발을 벗어야 하더라. 아이들이 잔뜩 모인 곳이니 이곳이 성전일 수 있겠단 생각에 신발을 벗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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