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편지
수영아.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은 마음에 벽이 없어. 그 말은 친해지기 쉽다는 뜻이기도 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방 와서 안기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대하니까. 예쁜 사람을 보면 “빛이 난다”고 말하잖아, 나는 아이들을 볼 때 그걸 느껴. 어쩜 저렇게 빛이 날까, 어떻게 저런 빛깔을 가지고 있을까. 아이들이 빛나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일 거야.ᅠ그러니까 벽이 없다는 건 아직 뭔가를 숨길 필요나 자신이 숨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겠지.
이 유치원 아이들 역시 순간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얼굴과 몸짓으로 보여줘. 행복하면 그 행복이 직접 눈에 보이고, 신나면 그 신남이 온몸을 덮고, 심통 나면 그 심통이 가감 없이 드러나. 그런 까닭인지 한번 울기 시작하면 잘 달래지지도 않더라. 게다가 왜 다른 아이들까지 따라서 우는지! 한 공간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우는 걸 몇십 분 동안 지켜보고 있자니, 유치원에 오기 전까지 하던 종교에 대한 고민이 우습게 느껴지더라. 종교가 어떻다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 일단 눈앞의 아이부터 달래야 할 문제였어.ᅠ
이곳엔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 나름 잘 꾸미고 사랑받은 티가 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어떤 아이는 오랫동안 씻지 못해서 온몸에 피부병이 번져 있기도 해. 부모에게 심한 학대를 받는 아이, 심지어 가족의 방관으로 며칠 동안 굶어서 이곳 선생님이 찾아가 먹인 아이도 있다고 해. 벽이 없는 만큼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겠지.ᅠ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외국어를 배우거나 적성을 살리는 일 같은 거잖아. 그런데 이곳의 교육은 일단 끼니를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해.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내가 밥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걸 가르쳐야 하지.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을 찍는 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게 돼. 모든 사정을 듣고 셔터를 누를 때, 눈앞의 아이들은 천사같이 예쁘지만 내가 사진으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도 들어. 내 프레임을 벗어난 곳엔 상처가 있고 그걸 다 담아내진 못하니까. 이건 내 문제기도 하고, 아이들이 그런 사정을 갖고 있으면서 너무 예쁜 탓이기도 해. 어쩌면 내가 일부러 피해서 찍고 있는지도 몰라. 카메라의 뷰파인더 안에도 내 나름의 벽을 세워놓은 건 아닐까.ᅠ
이곳엔 나처럼 어색하게 웃는 아이도 있어. 벌써 벽을 쌓는 법을 알았다는 뜻이지.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으면 저 어린 나이에 자신을 감추고 보호하는 법을 익힌 걸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울고 있을 때 그 아이는 울지 않았어. 지금은 울 상황이 아니란 걸 알고 있거나 울음 참는 법을 배운 거겠지. 말을 할 때도 조용히 얘기했고, 내게 다가와 매달리기보다 한두 걸음 떨어져서 쳐다만 봤어.
수영아. 내 상처는 실패 때문에 생긴 거고,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단 한 번도 누구를 탓한 적은 없어. 항상 나를 탓하지. 하지만 지금 저 아이는 그렇지 않잖아.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뭘 얼마나 잘못했겠어. 수많은 아이들 중 그 아이에게 계속 눈이 갔어. 무언가 해주고 싶었지만 마땅히 해줄 게 없더라.ᅠ
크리스마스 행사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 오색 분장을 했어.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이 와서 사진도 찍어줬어. 혹시 그 아이도 부모님이 오나 지켜봤는데 계속 혼자더라. 그리고 연극이 시작됐어. 예수님이 태어나고 동방박사가 마구간으로 찾아오는 이야기였어. 연기를 잘하는 아이, 노래를 잘하는 아이, 또 전부 꽝인 아이도 있었어. 아이들은 다양한 필체로 쓰인 글씨였고, 글씨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되기도 했어. 예를 들어 아이들은 연극이 끝난 뒤 다 같이 이렇게 외쳤어.
“메리 크리스마스!”ᅠ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예수님도 부처님도 이곳에 계시면 좋겠다 싶었어. 두 분 중 누가 됐건 기뻐하셨을 거야. 또 껴안고 위로해 주셨을 테고.
처음 이곳에 오면서 하던 종교에 대한 고민은 멀리서 지켜볼 때나 가능한 생각 놀음이었던 것 같아. ‘종교’ 자체는 순수해. 이미 그 단어 안엔 사랑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자본’도 마찬가지로 돈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진 않잖아. 결국 종교건 자본이건 그게 누구 손에 들려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이곳 선생님들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더라. 나는 이분들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행사가 끝난 다음 유치원에서는 준비한 도시락과 생필품을 나눠줬어. 멀리서 지켜보니 ‘그 아이’도 받아 가더라. 나는 집으로 가는 아이를 불러서 초콜릿이랑 이것저것을 내밀었어. 아이는 처음엔 쭈뼛쭈뼛하더니 곧 받아 넣으며 어색하게 웃더라. 원래 그러려던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꼬옥 안아주며 말했어. “메리 크리스마스.”
나야 잠깐 왔다 가는 사람이니까 이러는 게 오히려 안 좋을 수 있지 않나 싶으면서도, 그 아이가 짧은 순간이나마 사랑받는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내 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야. 이곳에 들어올 때 신발을 벗은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