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편지.

내가그어놓은금

by 박원진

어제 편지에서 얘기한 일본인이 조금 전 내 방을 다녀갔어. 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상태였고. 이 얘기를 하려면 아침에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아.
오늘 아침에도 그를 잠깐 만났었거든. 같이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사람이 무척 유쾌한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왜 밤에 이상한 소리를 내는지 물어봤어. 그는 웃으면서 “너도 밤에 소리 질렀잖아!” 하더라고. 둘이 한참 웃다가 내가 “사실 여긴 호텔이 아니라 정신병원이고, 우리 둘만 호텔로 착각하고 있는 거야.” 라도 말하니 그는 “그럼 난 평생 입원할래. 매일 여행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얘기했어.
아침에 봤던 그는 세상 걱정 없어 보이는 밝은 사람이었고, 웃는 상에 동그란 안경테가 잘 어울렸어. 내게 만달레이에 가볼 만한 곳을 여럿 소개해줬고 담배를 다 핀 다음엔 주머니에서 사탕도 꺼내줬어. 하지만 딱 그 정도까지의 거리였어. 본인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좋은 이야기만을 나눈 뒤 헤어지는 정도. 여행을 하면 이렇게 스치는 사람은 많아. 그게 여행 친구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땐 그 밝기만한 모습 때문에 더 거리감을 느끼게 돼.

오늘 일정은 ‘열차길 옆 사람들’을 다시 방문하는 거였어. 크리스마스에 다녀온 이후 그곳이 계속 생각 났거든.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고 기회가 된다면 더 괜찮은 사진을 찍고 싶었어. 크리스마스에 찍은 사진이 별로기도 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밥은 어떻게 해 먹는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밤엔 어떻게 생활하는지 같은 게 계속 궁금했거든.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고 난 그 ‘다름’이 두려우면서 또 한편으론 호기심을 가졌던 것 같아. 그렇게 다시 찾아갈 방법을 찾다가 유치원 선생님 중 한 분이 그 곳에 사신다는 걸 알게 됐고, 한국인 선생님을 통해 그 집에 방문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여쭤봤어. 다행히 허락해주셔서 약속을 잡았어.

내가 방문한 집은 ‘퓰립’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선생님댁이었어. 이 선생님의 동생들 역시 같은 유치원에 다녀. 선생님은 남은 수업이 있어서 난 동생들을 따라 그 집을 찾아가게 됐어. 둘 모두 초등학생이었고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했어. 예를 들면 이렇게- 기찻길까지 가는데 여러 개의 우물을 지나야 했거든. 근데 그 우물마다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는 거야. 오후 1시에 목욕하는 게 신기해서 내가 손목시계와 목욕하는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며 "왜?"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큰 애는 나처럼 목욕하는 사람과 태양을 번갈아 가리킨 다음에 자기 몸을 꼭 끌어안는 시늉을 했어. 난 그제야 아! 했지. 이곳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니 해가 가장 따뜻한 시간에 목욕을 하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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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립선생님 댁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어.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고 해) 처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첫인상은 ’아 어둡다.’였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난 그 어두운 첫인상이 조금 무서워서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어. 다행히 그때 할머니께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내오셨고, 난 그 차를 마시며 몇 분 동안 문 앞에서 서성였어. 차를 마시는 동안 내 눈도 서서히 어둠에 적응했고 마음도 훨씬 안정되는 게 느껴져서 집안으로 들어갔어.

제일 먼저 거실이 보였고 거기엔 커다란 발전기가 있었어. 아마도 그 발전기를 돌려서 집안에 전기를 공급하는 듯 했어. 티브이와 DVD 플레이어도 있었는데 영화를 보기보단 음악을 듣는 용도 같았어. 대부분이 음악 CD였거든. 나머지 방엔 손으로 돌려 충전하는 LED 랜턴을 썼어. 방안은 거실보다 더 깜깜해서 안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아예 들어갈 생각조차 안 했는데 아이가 내 팔을 잡고 방으로 데려가 줬어. 어두운 방 안에 LED 랜턴을 켜자 벽으로 가족사진과 함께 아이들이 받은 상장, 돌아가신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진이 차례차례 눈에 들어왔어. 이 랜턴은 그리 밝지 않아서 눈앞에 있는 것만 겨우 알아보는 수준이었고 또 금방 꺼져서, 다시 어두워지면 아이는 달달달 소리를 내며 불을 밝혔어.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솔직히 난 이 순간에 ‘극장’을 떠올렸어.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떠올린다는 게 웃기긴 했지만 꿈속에서처럼 기분 나쁘진 않았어. 오히려 그 방이 참 편안하게 느껴져서 아이와 함께 잠시 앉아있었어. 아이는 불빛이 약해질 때마다 다시 롤러를 돌렸고, 그때마다 방안에 이불, 라디오, 책 같은 사소한 물건들이 특별한 장면처럼 등장했어. 난 아이에게 “너 영사기사 같아.”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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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따라 부엌도 가보고 화장실도 구경했어. 그리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을 땐 아까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던 큰 나무가 보이더라. 난 아이에게 “왜 이 나무를 베지 않았어?”를 몸으로 표현했지만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어. 아마 그 나무를 벨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어. 나무 몸통엔 작은 제단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로 신선한 음식이 올려져 있었어. 내가 손으로 그걸 가리키자 아이는 눈을 반쯤 감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어. 난 아이의 소원이 궁금했지만 물어보는 대신에 나도 아이와 같이 잠시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어.

집을 나오니 세상은 다시 환해졌고 이 느낌은 정말로 영화를 다 본 뒤 극장을 나올 때와 비슷했어.
나도 꿈을 깬 뒤에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바로 돌아가는 게 아쉬워서 기찻길을 따라 조금 더 걸었어. 점심시간이라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았고, 낮잠을 자거나 마작과 비슷한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난 그 사람들을 다 찍고 싶었는데 용기 나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기만 했어. 그렇게 사람들을 구경 하며 걷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내 이름을 물어봤어. 내가 ‘원진’이라고 말하자 그는 어색한 발음으로 원진! 원진! 하면서 자기를 소개했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자기를 찍어줄 수 있냐 묻길래 난 이때다 싶어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어. 사진 찍은 걸 보여 드리니 무척 좋아 하셨어. 또 자기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셨는데 배가 고프긴 했지만 거절했어. 겁도 났고 무엇보다 여긴 만달레이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데 그들 밥을 먹는다는 게 좀 미안하게 느껴졌어. 그렇게 또 얼마쯤 걷자 이번엔 다른 사람이 다가와 내게 인사를 하고 같이 밥을 먹자고 했어. 솔직히 난 이 사람들이 밥에 뭘 탄 게 아닐까 생각도 했어. 하지만 너도 이분들의 표정을 봤다면 잠시나마 그런 의심을 품었다는 게 미안해질 거야. 어떤 사람은 다가와 내 팔짱을 끼기도 했고, 커다란 보온병을 들고 와서 차를 따라 주기도 했어. 난 이런 호의가 고마우면서도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 처음 보는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인 걸까? 아니면 그냥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가 있는 걸까? 그렇게 몇 번을 거절하고 나도 용기를 내서 한 집에서 밥을 먹었어. 그게 이 볶음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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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점심을 먹은 이 집은 퓰립선생님 댁보다 더 작았고 부엌도 집 밖에 있었어. 당연히 밥도 밖에서 먹었지. 다섯 식구가 밥공기와 수저 하나씩을 들고 집 앞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은 정말 재밌었어. 거기에 내가 껴서 여섯이 됐고, 잠시 뒤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일곱이 됐지. 우린 다 똑같은 볶음밥을 먹었어.
밥을 먹으며 생각해봤어. 만약에 내가 이 집의 주인이었다면, 그리고 나 같은 여행자가 이 길을 지나갔다면 그를 초대해서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었을까? 아마 난 그러지 못했을 거야. 우선은 내 가난한 모습을 보이기 싫고 또 내가 먹을 밥도 부족하니까. 딸린 식구가 다섯이나 되는데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눈이 가진 않았을 것 같아. 뭐 고양이야 너무 예쁜 생명체니 어쩔 수 없지만 난 다르잖아.

난 이미 이곳에 올 때부터 정확한 선을 긋고 왔어. 이들은 ‘가난한 사람’이고 나는 그걸 ‘구경하는 여행자’였지. 단어를 바꿔 좋게 표현할 수도 있어. 관찰자, 사진작가, 직접 체험하는 사람. 하지만 뭐가 됐건 난 그들과 다르다는 구분선이 있었어. 그리고 그 다름만큼 거리감이 생겼고. 반면에 이들은 자신과 나를 구분 짓지 않는 듯 보였어. 그냥 날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대했어. 옆 동네에 사는 삼촌처럼, 밥시간이 되면 찾아오는 고양이처럼 말이야. 내가 그어놓은 선을 불쑥 넘어올 땐 좀 놀라기도 했지만(예를 들어 한 아이는 한참 동안 내 무릎에 누워 잠을 잤고 또 어떤 아이는 자기가 먹던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떠서 내 입에 계속 넣어줬어.) 그게 싫진 않았어. 내 밥그릇이 그들의 것과 똑같다는 게, 내가 앉은 자리도 땅바닥이라는 게 오히려 편했어. 아마 이분들이 날 극진히 대접 했다면 난 얼마 안 있고 그 자리를 떠났을 거야. 같이 차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그들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들의 마음이 나보다 훨씬 여유롭다는 게 느껴졌어. 아마 나와 같이 점심을 먹은 그 누구도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거야. 이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어.

다시 일본인 이야기를 하면 그는 내 방에 찾아와 안부를 묻고는 오늘 본인이 어디에 갔고, 무엇을 봤고, 뭐가 맛있었다 같은 얘기를 한참 했어. 아침에 느꼈던 딱 그 정도의 거리감이었지. 나 역시 기찻길옆 집을 구경하고 같이 밥을 먹은 얘기를 해줬어. 한참 얘기를 나눈 뒤 둘 모두 말이 끊겼고 잠시 침묵이 흘렀어. 열차길 사람들과는 말이 거의 통하지 않았어도 편안함을 느꼈지만 그와의 침묵은 불편했어. 아마 그 불편함은 내가 그어놓은 선과 그가 그어놓은 선이 만났기 때문일 거야. 둘 모두 서로의 선을 넘지 않았고 또 넘어 오길 원치 않았으니까. 난 이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아 피곤하네.”라고 먼저 말했어.
그는 일어나려는 듯 몸을 움직이더니 말을 이었어.
“난 내일 일본으로 돌아가. 정말로 정말로 돌아가기 싫어."
난 “나도 여행이 끝날 때가 되면 너랑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아.”라고 얘기했어. 그러자 그는 “여기서 혼자인 느낌과 일본에서 혼자인 느낌은 정말 달라. 너도 그래?"라고 묻길래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악몽을 잘 안 꾸는데 여기 와선 거의 매일 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라고 말했어,
그는 "나도 그래. 여기에 있으니 일본에서보다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는 것 같아. 그래서 이상한 꿈도 꾸는 거고. 어쩌면 우리가 악몽을 꾸는 건 좋은 징조일지도 몰라. 여기 좀 봐달라고 마음이 말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는 잠깐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어. 난 중간중간 “그래” “슬펐겠다” “힘들었겠다” 같은 말을 했고. 사실 그런 말을 하면서 내가 누굴 위로할 깜냥이 되나 싶고, 영어로 하는 위로는 처음이라 이런 뉘앙스로 말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난 최선을 다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어. 내가 결혼을 해본 적은 없지만 뭔가에 실패한다는 게, 돌이킬 수 없다는 게 내 얘기 같았거든. 이야기가 다 끝나고 아까처럼 잠깐의 침묵이 흘렀지만 이번 침묵은 훨씬 편안했어. 내가 "잘 자."라고 인사를 하자 그는 주머니에서 티백으로 된 일본 차를 꺼내 건넸어. “자기 전에 마셔봐. 잠이 더 잘 오더라고.”

잠시 뒤 옆방에선 그가 침대에 눕는 소리가 들렸어.
난 일어나서 방 끝에서부터 맞은 편 끝까지 걸어가 봤어. 다섯 걸음이 조금 안 되더라. 내 방 끝에서 옆방 일본인 침대까지는 벽 하나만 지나면 되니까 아마 두세 걸음 정도면 갈 수 있을거야. 또 오늘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봤어. 사진을 보듯 얼굴 하나하나가 마음속을 지났어. 그들은 비록 지금 내 눈앞엔 없지만 내 마음 안에선 선명한 얼굴로 있었어. 마지막엔 조금 전까지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하던 일본인 얼굴이 떠올렸어. 그가 내 방에 찾아오기까지, 티백을 주머니에 넣기까지, 내게 마음을 터놓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봤어.


수영아. 난 내 마음이 작다고 생각해. 아마 이 방보다도 작을 거야. 어떨 땐 내 손바닥만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 티백보다도 작을지 몰라. 또 정말로 엉망이라 나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위안인지, 고마움인지, 동정인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난 이렇게 엉망인 곳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직은 저 일본인처럼 내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마음의 크기를 정한 것 역시 나라는 생각이 들어. 금을 그어놓은 것도 나고, 여기 이상 넘어오지 말라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것도 나고, 그럼에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것도 나야.
수영아. 나로선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그나마 네게 이야기하며 내 마음은 조금 정리된 느낌이 들거든. 낮에 구경했던 퓰립 선생님의 방처럼 편지를 쓰는 시간 동안은 불빛이 비쳐서 내 마음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고마워.
내일 아침엔 일본인을 찾아가 이름을 물어볼 생각이야. 그리고 그가 괜찮다면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해. 기회가 된다면 그의 사진도 찍어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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