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이 작업을 처음 구상한 건 '인서트 촬영'을 하면서였다.
당시 나는 인터뷰 촬영으로 영화감독, 평론가, 화가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면 5~15분 정도 인서트를 찍을 시간이 주어졌다. 인터뷰 영상 중간중간에 섞을 소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겐 이 시간이 인터뷰보다 재밌게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인터뷰가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이야기라면, 인서트 촬영은 공간과 소품을 통해 한 사람을 은유적으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가구의 색과 배치가 인터뷰이의 말투와 닮았다고 느낀 적도 있고, 어떤 곳은 공간 자체가 작업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난 책장을 살피는 걸 좋아했다. 어떤 책을 구입했고, 어느 위치에 꽂아 두는지를 통해 한 사람이 가진 삶의 태도와 지향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떤 이의 공간을 15분 관찰하는 것이, 그 사람과 15분 동안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만약 '이야기'와 '공간'을 같이 다룬다면 한 인물에 대해 좀 더 풍성한 텍스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의 공간'을 기획했다.
첫 번째 나의 공간은 ‘임지민 작가’와 함께 했다.
나는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은 '성실함'이라 생각한다. 어떤 예술이건 밑바탕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으로 다져지기 때문이다. 임지민 작가는 그 노동을 우직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평일엔 퇴근 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휴일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할애했다. 또한 그녀는 무척 신중한 화법을 가지고 있었다. 속에서 여러 번 되새김질한 후 나오는 말의 무게랄까. 나는 종종 그 화법이 그녀의 그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임지민 작가의 공간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예상하며 이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이 끝난 지금, 그 예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돌아보면 나는 계속 그녀의 공간을 '정의' 내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 글을 공개하지 않았던 까닭도 3차례 방문할 때마다 바뀌는 정의가, 작업의 실수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6년이 지난 얼마 전, 지민 작가가 이때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단지 사진 한 장이었지만 신비롭게도 그 당시 작업실에서 들었던 음악, 물감에 섞던 기름의 냄새, 작업실 앞 놀이터에서 바라봤던 하늘까지 짧은 인서트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글도 다시 읽어봤다. 여전히 실수가 눈에 띄었지만, 지민 작가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인물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은 이 작업에 임하던 내 동력이자 마음가짐이었다.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