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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진 Jan 17. 2021

아버지가 계신 곳에도 눈이 오는지

일곱

옥탑 작업실 앞으로 눈이 수북이 쌓였다. 

빗자루로 눈을 쓸어내며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도 눈이 내릴까. 어느덧 내일이면 그가 떠난 지 1년이 된다. 


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오늘처럼 춥지도, 눈이 오지도 않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해서 누나와 함께 '혜화동주민센터'에 가야 했다. 자주 걷던 길이었음에도 다니는 버스며, 간판의 색깔, 거리의 소음까지 생경했다. 누나는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 이제는 편히 보내드리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시린 공기가 느껴진다. 살아계실 땐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뵈었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엔 매일 기억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그 기억들 중엔 그와 같이 눈을 쓴 기억도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독립해서 나갈 때까지, 우린 자주 같이 눈을 쓸었다. 

어릴 땐 눈을 치우는 일보다 놀고 싶어서 따라나섰다. 집 앞을 다 쓸고 나면 가족끼리 편을 나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다. 눈사람을 네 개 만들었는데 가장 큰 건 아빠, 그 다음은 엄마, 나와 누나의 눈사람은 아이 주먹만큼 작았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아파트를 떠올리면, 입구에 나란히 서있던 눈사람이 그려진다. 


내 몸집이 아버지보다 커지고 난 뒤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 눈을 쓴 기억 속엔 아버지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많다. 생각해보면 그는 '왜 눈을 쓸어야 하는지' 같은 말은 한 적이 없다. 그저 눈이 오면 의레 나가 비질을 했고, 다음날이면 사람들은 눈이 치워진 길을 걸었다. 돌아보면 그 뒷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눈이 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사람이 늙고 죽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부자연스러울 뿐이다. 내 몸은 시간 속에 살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밀려가지만, 마음은 자주 과거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나는 여전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겪고도 꿋꿋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놀랍다. 그나마 위안인 건 나의 아버지 역시, 당신의 부모님을 보낸 후에도 제 몫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지금 내리는 눈처럼 내게 위로가 된다. 

원래는 돌아가신 날짜에 맞춰 내일 성묘를 가려했지만, 눈 쌓인 길을 가는 게 위험해서 다음 주로 미뤘다. 그때까지 아버지 묘에 눈이 쌓여있다면 치워드려야겠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도 눈이 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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