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에게서 내 어릴 적 단점을 보았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때의 얼굴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공기가 낯설었다.
그 사람 안에서
내 예전 모습이 보였다.
나르시즘적이고, 귀족인 척하면서
사실은 불안했던 시절의 나.
말은 공손하고 웃음도 예의 바른데
어딘가에서 묘하게 구린 기운이 흘렀다.
좋은데 무심한 척하고,
싫으니까 더 예의 차리던
그 어색한 회로 말이다.
그땐 몰랐다.
그게 방어였다는 걸.
감정을 드러내면 약점이 된다고 믿었던 시절.
그래서 여유 있는 척, 괜찮은 척으로
자꾸 나를 덮어두곤 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왜 나를 보고 누군가는 ‘재수없다’고 했는지,
왜 한동안은 수없이 무시당했는지도.
나는 단단하지 않았고,
내 안의 불안을 교양으로 포장하고 있었던 거다.
그 사람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이제 그 회로 밖에 서 있다는 걸.
불안으로 자신을 지키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내 감정의 결로 사람을 읽고,
필요하면 거리를 두고,
그래도 남을 미워하지 않는 쪽으로 서 있다는 걸.
적당함의 온도를 찾아가는 중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감정을 감추지 않되, 휘둘리지 않게.
그 온도를 알게 되면,
관계도 조금은 덜 아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