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회로 때문이었다는 걸.
누군가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면
짜증을 넘어, 갑자기 화가 났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선
“왜 나를 무시해?”라는 목소리가 동시에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눈앞의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누군가에게 향한 반응이었다.
어릴 적엔,
부모가 내 마음을 잘 몰랐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나빠질까 봐 삼켰다.
그때의 나는
“말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으로 굳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가 내 의도를 거슬러올 때마다
그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재생되곤 했었다.
이제야 조금 보였다.
화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때 말하지 못한 나의 잔향이었다.
그때의 나를 지키려던 본능이
지금까지 남아서
‘분노’라는 방식으로 나를 대신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화가 올라올 때
살짝 멈춰보려 한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야.
이 사람은 내 부모가 아니야.”
그 한 문장을 속으로 되뇌면,
몸이 천천히 현재로 돌아온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예전엔 나를 지키려던 울타리였고,
지금은 나를 이해하게 해주는 신호였다.
이제는 안다.
화가 터질 때마다
그 안에는
“이제는 내 마음을 들어달라”는
오래된 나의 목소리가 숨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걸 알아차린 순간,
나는 비로소 내 회로를 찾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