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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니내가작가라니
Oct 14. 2021
아주 작은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손바닥만 한 방 두 개와 두 구짜리 가스레인지가 전부였던 집, 조리공간이라고는 가장 작은 사이즈의 나무 도마를 올려놓으면 꽉 차던 곳이 우리 신혼집이었다.
계란 풀었던 볼, 몇 가지 채소들, 플라스틱 반찬통 몇 개를 넣으면 싱크볼이 꽉 찼다.
어쩔 수 없이 계란말이 하나 해 놓고 설거지하고, 빨간 어묵볶음 하고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살림을 꾸려갔다.
어느 날, 강정현 사원은 집으로 돌아와 갓 시집온 어린 색시에게 이런 말을 했다.
“회사 밥 너무 맛없어. 나 도시락 싸주면 안 돼?”
공교롭게 집에는 오빠가 총각 시절 쓰던 낡은 보온 도시락이 있었다.
알고 보니 결혼 전에는 어머님께서 아들 점심 도시락을 매일 싸주셨고, 결혼과 동시에 보온 도시락에서 해방되신 것이었다.
아, 그 바통을 내가 이어받게 되다니! 생각지도 않은 인수인계였다.
아침 여섯 시. ‘예약 취사를 시작합니다.’ 쿠쿠가 나를 깨운다.
눈은 감고 있지만, 냉장고에 어떤 반찬이 있는지, 남아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반찬은 무엇인지, 그 반찬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지 계산해 보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이래서 늦게 일어났다는 핀잔은 억울하다)
다행히 김치 볶음이라도 해놨으면 10분 더 잘 수 있었지만, 대게는 후다닥 몸을 일으켜야 했다.
‘예약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기 전까지 반찬통에는 뭐라도 넣어 놔야 했다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락 반찬은 빨간 어묵볶음이었다.
오빠의 즐거운 점심시간을 위해 넓은 웍을 가스레인지 왼편 화구에 올린다.
가스레인지가 너무 작아서 웍이 오른쪽 화구 근처까지 궁뎅이를 들이밀었다. 할 수 없지, 한 번에 한 가지 반찬만 만드는 수밖에
불을 켜고 콩기름을 넣었다. GMO 인지 NON-GMO 인지를 따질 새는 없다.
콩기름이 달궈지면 종종 썰어둔 편 마늘을 올려 향을 내고 불규칙하게 썰어둔 삼호 어묵을 넣는다.
아! 그전에 양파를 넣어야 했는데, 몇 번을 해도 매번 이 지점에서 아!!! 하는 소리를 내게 된다.
감자는 넣지 않는다. 익는데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그렇게 조금 볶다가 갈색 설탕을 한 바퀴 솔솔 뿌린다.
어디선가 캐러멜 라이징의 효과라든지, 간장을 넣기 전 설탕을 먼저 넣으라고 한 소리를 들어서이다.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초보 주부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설탕이 녹아들어 갈 때 간장을 반 수저. 쪼르륵. 계량은 하지 않는데,
그러다가 콸콸 쏟아지는 간장에 어묵볶음이 아닌 간장 볶음을 만든 적이 있어서 꼭 수저에 간장을 따른 후 뿌린다.
나무 주걱 두 개로 뒤적뒤적하다가 후다닥 고춧가루 통을 꺼낸다. 위아래로 손목 퉁퉁 튕기면서 고춧가루를 털털 털어낸다. 다시 뒤적뒤적.
그즈음 오빠가 일어난다. 축 늘어진 몸뚱아리는 귀엽지만 얄밉다.
도시락을 싸는 일이 좋지만 싫었고, 소꿉놀이하는 기분이었으나 마냥 즐겁진 않았다.
너른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주고 싶었지만 종종 생색을 냈으며, 쿨하고 싶었지만 고마움을 갈구했다.
3년 동안 3번은 “그렇게 싸기 싫으면 안 해줘도 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싸기 싫은 건 아니었는데.
‘안 해도 돼’라는 소리를 들으니 ‘싫어! 할 거야!’라고 반박하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통이 깨끗하게 비워지고 빨간 고추기름만 덕지덕지 묻어있는 반찬통을 볼 때면 늘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도시락 통을 물에 넣어두지 않은 지점에서는 스멀스멀 화가 났다.
‘내가 도시락을 싸주면 설거지는 해놔야 하는 것 아냐?’ 마음속에 정의를 세우고 나를 괴롭혔다.
마음에서 일렁이는 양가감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화는 숨기고 삭혀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한마디 말뿐이면 되는 것을. “나 퇴근하기 전까지 도시락 통 설거지는 해 줘.”
아무튼, 도시락. 징하게 쌌다. 3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서.
낡은 보온 도시락이 락앤락 모던 도시락으로 바뀌고, 다시 코스모스 보온 도시락으로 바뀌었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 보면 지나치게 성실했던 내가 좀 아쉽다.
적당히 ‘오늘은 밖에 나가서 동료들이랑 외식이라도 좀 해!’라고 말할 걸 싶기도 하고, 파업이라도 해서 ‘제발 도시락 싸주세요’ 소리를 못 들어 본 것도 안타깝다.
난 도시락의 끝을 기다리기라도 했듯, 임신과 함께 입덧을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하게 되었고, 오빠도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밥을 불평 없이 먹기 시작했다.
아쉽다. 뭐가 아쉬운지 모르겠지만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오랜만에 도시락 가방을 덜렁덜렁 들고 가는 오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일은 도시락 싸준다고 해볼까? 그것이 나의 자잘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생색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