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작가라니내가작가라니 Oct 21. 2021
나에겐 오랜 습관이 있다. 둥그런 식탁에 앉아 노란 주광색 조명을 켜고 책 한 권을 펼친다.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손은 연신 머리카락을 훑는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머리칼을 쥐고 스윽 쓸어내리며 촉감을 느낀다. 인지하지 못할 때도 내 손은 종종 내 머리칼을 휘젓고 있다. 그러다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집게처럼 쥐고는 머리칼을 이리저리 만진다. 일명 ‘돼지 털’이라고 불리는 거친 머리칼을 찾기 위해서이다.
약 9만 개의 머리칼 중에 몇 개 되지 않을 돼지 털을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우연히 알게 된 이 감촉은 묘한 중독을 낳았다. 손톱 옆 작은 거스름의 존재를 인식 한 순간, 그것을 도려내기 까지 만지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것처럼 내 손은 어딘가 있을 구불구불한 털을 찾아 만지고 뽑아내고 싶어 했다.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은 읽을 때, 그리고 글을 쓸 때 발현되었다.
목적 없이 떠오르는 말들은 휘발성이 강하다.
연고도 없이 맥락도 없이 불현 듯 피어난 이야기는 잠깐 물을 마시는 사이, 머리에 올린 샴푸 거품을 걷어내는 사이에도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라졌는지 숨어버렸는지 모를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탐험대가 된 심정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뇌를 열어 수색할 수 없으니 머리카락이라도 수색을 하나보다. 가끔 하나의 단어라도 찾은 날은 성공적인 날이다. 구불구불한 돼지 털 역시, 매일 찾아낼 순 없다. 쉽게 쓰이지 않을 땐 손으로 머리칼을 휘젓듯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결국 무언가 뽑혔을 때의 결과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이 머리칼이든 한 편의 글이든.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을 무작정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건 필사였다. 매일 한 편의 이유 없는 글을 쓰는 일이 좋다. 일상에서의 나는 속물 같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다.
이상의 가치와 현실의 마주침 사이에 균형이 어려워 매일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책을 읽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은 내가 나를 나로 바라보는 첫 시작이었다.
무지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알면 알수록 내가 알아가는 나와 행동하는 나의 다름을 인지하고는 부끄러웠다. 두 눈을 부릅뜨고 볼 수가 없었다. 곧잘 욱하는 화를 가려야 했고, 손익을 따지는 뇌의 기능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현실도피랄까. 읽다가 다시 써 내려가고 싶은 지점을 만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몇 번 겪고 나니 뭘 깨달았다 ‘라고 쓰고 싶지만 난 아직 깨달은 것이 없다. 매 순간 같은 지점에서 좌절하고, 다시 더 나은 내가 되어볼까 북돋웠다가, 다시 나라는 인간이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주저앉는다. 그럼에도 다시 읽고 문장을 찾아 그 문장 아래 내 이야기를 쓴다. 그 일은 좌절한 나를 보듬고, 머리를 줴뜯는 나를 토닥이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 뭘 깨달은 건가?
쓰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되는 글의 이유처럼. 나는 지금 내가 모르는 인생을 산다. 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파악하는 중이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도 목적을 모른다. 그저 쓰면서 만나게 되는 감정들을 다시 써볼 요량이다.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생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