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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손가락만큼의 온기

성큼 다가온 추위만큼 우리의 밤도 조금 더 빨리 찾아왔다.

하루 종일 재잘거리며 눈에 알짱이던 오빠와 나, 둘이 빚어낸 사랑의 결실들도 잠이 들었다.

나는 내 책상 앞으로. 오빠는 2층 컴퓨터 앞으로.

우리는 각자의 영역으로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등은 켜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 스며들길 바랐다.

멍하니 책의 네모난 형태를 바라보다 책상 위에 달린 작은 등을 켰다.

내 세상이 밝혀졌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스윽- 문이 움직이는 인기척이 들렸다.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한 채 간첩이라도 잡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갔다.

댤칵-

주방 불빛이 내 자리까지 빛을 보낸다. 이건 신호다.


"오빠 뭐해?"

쪼르르 달려 나가며 오빠를 부른다.

뒤돌아선 오빠손에 마른오징어 한 마리가 대롱대롱.

"오징어? 나도 먹고 싶다. 어제 먹고 싶었는데, 참았어."

"오늘 뭐 해야 해?"

"응. 글쓰기 줌. 맥주 마시게?"

"응"


우리는 잠깐 접선했지만 이내 각자의 영역으로 다시 흩어졌다.

나는 내 책상 앞으로. 오빠는 1층 주방 테이블 앞으로.


한참이 지났을까.

이어폰을 끼지 않은 왼쪽 귀로 방문이 열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이번에는 문고리를 잡은 채 몸 절반이 선을 넘었다.

우리는 잠깐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고, 나는 아마 '무슨 볼 일이 있느냐' 하는 눈빛이었을 것이다.

사실밖에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오빠,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두 시간이 조금 더 났다.

나와보니 주방 등이 외로이 켜있었다.

나는 안다. 그 자리에 홀로 앉아 상대의 등을 바라보는 일의 마음을.

그럼에도 '무슨 볼 일이 있느냐'의 눈빛을 보낸 건 실수였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침실로 올라갔다.

불도, 티브이도 켜놓은 채 베개를 베고 자고 있는 오빠.

실눈을 뜨더니 "졸려어어" 한다.

서둘러 불을 끄고 더듬더듬 옆자리를 찾는다.

오빠는 침대에 2/3를 차지하고 누워서는 내가 옆에 눕자마자 고른 숨소리를 낸다.


나는 오빠의 발목 위에 내 종아리를 얹는다.

곧 다리가 저려와 무릎을 살짝 굽혀 오빠 발바닥 위에 내 아킬레스건을 올린다.

따뜻하다.

자는 오빠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그마저도 따뜻하다.


오빠는 왜 두 번이나 내 방문을 열었을까.

두 번만 열고 싶었을까. 그 보다 더 많이 내게 오고 싶었을까.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포개고 싶었지만 새끼손가락만 잡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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