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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지 못한 인생 책이라서.

 12살, 나의 한 달 용돈은 3만 원이었다. 매월 1일 빳빳한 배춧잎 3장을 받았다. 학교 앞에는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문방구의 불량식품도, 분식집의 떡볶이도 내 발길을 잡지 못했다. 하루 1,500원을 바친 곳은 바로 도서 대여점이었다.

그곳의 왼쪽 벽에는 이중으로 된 책장 가득 만화책이 꽂혀있었고 그 앞 3단 책장에는 소설책들이, 맞은편에는 비디오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선택은 왼쪽.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에 꿉꿉하고 눅눅한 냄새가 나는 듯한 갱지. 아무런 색감이 없는 펜 터치로 완성된 그림에 빠져 한 달 용돈은 제구실을 못 한 채 사라졌다. 의미를 모를 의성어들이 가득했던 책. 재미있었다. 만화책을 빌려 나와 대여점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자리에서 읽고 반납하는 날들도 있었다. 더는 읽을 만화책이 없어지고 신간을 기다리는 시간과 반비례해 나의 만화책 사랑도 점점 희미해졌다. 나의 발길이 끊긴 지 얼마 안 되어 도서 대여점도 문을 닫았다.


 대게는 불을 켜지 않았다. 모니터가 내뿜는 빛. 그 반경 안에 몸을 욱여넣었다. 발은 윙윙거리는 본체 위에 올린 채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는 마우스 휠을 내렸다. 무섭게 화면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그즈음 인터넷 소설에 눈을 떴다. 어떤 플랫폼에서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놈은 멋있었다]에 나오는 ‘너, 내 마누라 해라-_-^.’ 이 멘트를 잊을 수 없었다. 나는 소설 속 일진의 사랑을 받는 여주인공이나 두 사람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소설의 남녀가 역경을 겪을 때마다 나는 늘 함께했다. 배꼽 아래 자궁인지 방광인지 모를 내장이 저릿저릿한 통증을 매 순간 느꼈다. 이 느낌은 중독성이 있었다. 오로지 활자를 읽어 내려갈 때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다. ‘감동이야’라고 뇌를 스치는 무미건조한 신호가 아닌 몸을 통해 느껴지는 리얼 감동이었다. 화면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코 종이책을 샀다. 아마 내 돈 주고 산 첫 책, 귀여니의 [도레미파솔라시도]였다. 인터넷 소설도 더 새로운 에피소드가, 약속된 회차가 끝난 후 더 이상의 외전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나의 인터넷 소설 사랑도 막을 내렸다. 그 이후에도 나는 나의 내장을 건드리는 감동을 위해 쉽고 진한 로맨스 소설을 주로 읽어왔다. 그들의 사랑은 어김없이 나에게 리얼 감동을 선사했다.


 철저히 대리만족을 위한 독서였다.

현실의 나는 근근이 한 남성에게만 사랑을 받았고, 그들은 대부분 기브 앤 테이크를 원했다.

나의 세계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내가 누리지 못한, 정상일지도 모르는 사랑에 환호했다.

신랑과 말다툼을 한 날이면 로맨스 소설을 낚아챘다.

낭랑한 그들의 첫 만남을 읽고 그렇지 못했던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추웠고, 차였고, 쟁취했다. 치열한 장면이 굴비 엮듯 줄줄이 떠올랐다. 다 지나간 일에도 승질이 나려던 찰나에 다시 활자는 그들의 세상으로 나를 부른다.

여주인공은 나. 남주인공은 신랑. 대차게 뻥- 차 버리기도 한다.

이쯤 되면 뭐가 사실인지 뭐가 소설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나는 나의 대리만족을 위한 독서를 응원한다. 혹자는 문학적 가치가 없다느니, 남는 것이 없다고 비하하지만, 나는 아직 우리 집에 남아있는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내 이름은 김삼순]을, [미 비포 유]라는 책을 좋아한다. [미 비포 유]라는 소설책은 영화로도 좋았지만 그게 다였다. (물론 사지 마비 환자인 윌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로는 상체가 탄탄한 근육질의 샘 클라플린으로 빙의된 점은 아주 흡족했다) 화면 속 둘의 헤어짐은 내 눈물이 차오르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를 떠들어 댔고, 설렘을 만끽하기도 전에 내 멱살을 잡아끌었다. 여기 보라고, ‘여기, 지금! 지금이야!’하고 채근당했다.  게다가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미묘한 부분은 활자가 아니고서는 그 느림을 감당할 수 없다. 심지어 난 그 부분을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왜냐면 그건 나의 감동 버튼이니까, 감동 버튼은 늘 내장의 전율과 함께 오니까.


‘재밌고, 음 재밌다’라는 말로밖에 나의 인생 책들을 소개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지 저 책들은 문제가 없다. 멋지게 포장하고 싶은데, 되게 읽으면 가치 있는 것처럼 추천하고 싶은데 아직 야트막한 나의 표현력으로는 한계다. ‘그거 뭐, 어디 상 받아서 책 표지에 상패가 딱 붙어있는 책만 인생 책이 된답니까?’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쳐본다.

기세 등등한 다른 사람의 인생 책들 사이로 한 떨기 로맨스 소설이 웬 말이냐. 라며 자신을 검열했던 내가 이제야 보인다. 이 글의 끄트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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