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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주하는 나의 진짜 감정

by 감정의 조각들

나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남편을 만나고 보니, 그는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는 모두가 나처럼 꿈을 꾸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줄 알았다.

남편과 싸운 날에는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들이 꿈에 나오기도 하고, 남편을 꿈속에서 흠씬 두드려주기도 한다. 전 남자친구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꿈속 무의식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또 직장에서 억울한 일이 있던 날에는 꿈속에서도 괴로운 상황을 마주한다. 그래서 행복하게 잠들려면 하루 동안 쌓인 감정을 잘 풀어내고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잠자리에 들면 오히려 하루의 감정이 더 깊어질 때가 많다. 행복했던 순간, 기뻤던 일들을 꿈으로 꾸면 좋겠지만, 힘들었던 일이나 부끄러웠던 순간, 감당하기 벅찼던 상황들을 꿈에서 더 자주 마주하곤 한다. ‘나는 왜 이런 꿈을 자주 꾸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쁜 감정들은 현실에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지만, 화내고 싶었지만 화를 내지 못했던 순간이나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해 답답했던 감정들이 꿈속에서라도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꿈속에서는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으니, 내 욕구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 꿈속의 나는 현실과 달리 꽤나 폭력적이고 다혈질이며, 때로는 막무가내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나는 꿈에서라도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스스로를 토닥이고 싶은가 보다.

일상에서의 억울한 일을 꿈에서라도 풀어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현실에서는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참아야 했고, 억울한 감정을 눌러야 했지만, 꿈속에서는 다르다. 억울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상사나 동료에게 따지고 묻거나,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내 입장을 설명하기도 한다. 혹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소리치거나, 드라마 같이 멋지게 한방을 날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꿈속의 나는 평소의 나보다 훨씬 솔직하고 당당하다. ‘왜 나는 현실에서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하고 아쉬워하면서도, 꿈속에서라도 속 시원히 풀어냈다는 사실에 후련함을 느낀다. 현실에서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울 때가 많다. 상대가 상사라서, 혹은 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또는 단순히 피곤해서 그냥 넘겨버린 순간들이 쌓여간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아서, 꿈속에서라도 쏟아내야 비로소 정리되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꿈을 곱씹어 보면, 그제야 내 감정이 얼마나 쌓였는지 깨닫는다. 꿈속에서라도 나를 지켜주고, 내 편이 되어준다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너무 현실감이 넘쳐서 꿈에서 깬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지만, 적어도 마음 한편이 가벼워지는 건 분명하다.

좋은 꿈을 꾸면 하루의 시작도 가볍다.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은 꿈을 꾼 후에는 아침부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이번에는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이런 감정과 욕구를 품고 있었나?’ 가만히 곱씹어 본다. 그러고 나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 꿈속에서 흠씬 두드려 준 날에는 아침에 깨서도 장난으로 남편을 한 대 툭 치기도 한다. 그리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내가 꿈에서까지 오빠를 괴롭힐 정도로 속이 상했으니, 이 정도는 맞아도 돼!’ 나름의 합리화를 시킨다. 남편이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만, 어쩔 수 없다.

꿈을 꾸고 나면 기록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잠결에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오타도 많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가끔 너무나 재미있는 모험을 하는 꿈이나 판타지 같은 꿈을 꾸면 ‘이걸 책으로 내야지. 그럼 나는 금방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기억이 흐릿해지고, 내가 적어둔 내용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꿈의 기억이 희미해 아쉽지만, 어쩌면 그 덕분에 더욱 자유로울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도, 심지어는 나조차 부끄럽게 느끼는 감정도 꿈속에서는 자유롭다. 그런 모든 일들이 깨어나서도 오래 여운을 남긴다면 나는 숨어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결국 꿈은 내 감정의 연장선이다. 남편은 꿈속에서의 일 때문에 내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억울해하지만, 아무래도 내 감정을 상하게 했던 게 분명하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서운하게 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계속 꿈을 꾸며 살고 싶다. 행복했던 일, 즐거웠던 일, 억울했던 감정들까지도 꿈속에서라도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언젠가 내 꿈 이야기들이 책이 되어 많은 사람과 공감을 나눌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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