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일이 닥쳤다. 상사의 인사이동 이후 나에게 많은 업무가 몰려왔다. 일이야 차근차근 해내면 되지만, 그 업무가 넘어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내가 한가해 보였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해 보이지 않았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날은 억울하고 속상해서 직장에서 울고 말았다. 다음 날은 화가 났고, 하루가 지나자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직장생활을 돌아보았다.
나는 제한된 근무시간 안에 맡은 일을 모두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바쁜 날엔 쉴 틈도 없이 일했다. 누구에게도 "일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스스로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시간에 쫓겼고, 조급한 마음에 예민해지기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들은 알아주지 않으니, 이제는 천천히, 정성 들여 일하기로 했다. 처음엔 그저 바쁜 척이라도 하려던 변화였는데, 의외로 만족감이 컸다.
일단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나는 주로 학생들을 상대하는 업무를 하는데, 학생들이 많이 찾아와도 즐거웠다. 느긋하게 일하다가 시간이 부족하면 남아서 하면 되니까. 조급하지 않으니 학생들에게도 더 친절해졌고, 덕분에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여는 게 느껴졌다.
일에 대한 애정도 생겼다. 이전까지는 나조차도 내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 일을 평생 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정성껏 하다 보니 여유로운 마음과 함께 일에 대한 애착도 생겼고,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보너스도 있었다. 천천히 일하다 보니 초과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었고,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무엇보다, 이제는 "고생한다"며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엔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혼자서만 바쁘고 초조하게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삶은 종종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를 성장시킨다.
남편이 사고를 쳐서 오랫동안 모은 돈을 잃고 빚만 남았을 때도 그랬다. 지금 모든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더 신중하고 철저해졌으며, 우울함에 빠지지 않으려 나를 다독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물론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한다. 돈이 될까 해서 이렇게 글을 써보고, 그림을 그리고, 이모티콘을 만들고, 공모전과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아마 평온한 상태였다면 해보지 않았을 일들이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어려움을 계속 겪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일이 나를 흔들겠지만, 나는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이끌어갈 것이다. 어떤 일이든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고, 어려운 순간마다 나는 발전하고 나아진다.
그렇게 단단해지는 나 자신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