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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소요정이 되기로 했다.

by 감정의 조각들

나는 청소가 취미다. 아니, 취미가 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녁이 되면 다시 덮을 이불을 왜 정리해야 하는지, 어차피 입을 옷을 왜 개어둬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축 아파트로 이사한 친구 집에 다녀왔다. 깨끗하고 정돈된 공간을 보고 온 후, 집에 돌아와 우리 집을 보자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돈이 없어 좋은 아파트, 새집에서 살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까지 지저분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그날 나는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청소를 했다. 청소에 흥미도, 요령도 없었기에 오래 걸렸지만, 그렇다고 누군가를 초대할 만큼 깨끗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사실 우리 집에서 청소 담당은 남편이었다. 결혼 초기, 나는 설거지를 맡기로 했고, 내 역할을 성실히 해왔다. 하지만 남편이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청소를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만이 쌓였고, 점점 도와주지 않고 방치하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집은 점점 어지러워졌고, 우리는 그 상태에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남편이 청소하기를 기다리다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섰다.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했지만, 몸을 움직이며 청소를 하다 보니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도 청소를 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나도 집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이전까지는 내가 청소에 소질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청소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청소가 취미인 동생에게 “나도 청소 요정이 되겠다”라고 말했더니, 동생은 “청소만큼 시간 대비 효율적인 취미도 없지 않아?”라며 웃었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효율성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점에서 청소는 최고의 취미다.

한 번 깨끗해진 공간을 유지하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청소를 해야 한다.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눈앞에서 집이 정리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즉, 매일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남편이 혼자 해외여행을 가 있는 동안,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너무 쉬웠다. 하지만 그가 돌아온 후, 집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처음에는 불만이 생겼지만, 청소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루에 한 곳씩 청소하다 보니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됐다. 묵은 때가 지워질 때까지 문지를 때,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TV를 보는 동안에도 몸은 쉴 새 없이 바닥이라도 닦는다. 운동도 되는 것은 덤이다.

무엇보다 집에 애착이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다. 이전에는 집이 지저분할 때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너무 편안하고 즐겁다. 여전히 새 아파트도, 좋은 시설도 아니지만, 현재의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다만, 청소가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건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청소용품 비용은 크지 않지만, 청소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 안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생겼다. TV 거치대를 바꾸고, 구축 아파트에 내 손으로 비데를 설치하고, 수전을 교체했다. 남편에게 맡길 수도 있었지만, 직접 해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무거운 책장도, TV 서랍장도 내 손으로 정리하고 조립했다. 그러다 보니 지출이 은근히 커졌지만, 여전히 즐겁다.


나는 이제 청소 요정이다. 오랜만에 내게 딱 맞는 취미를 찾았다.

오늘은 집에 가자마자 냉장고 정리를 할 생각에 설렌다.

청소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일단 시작해 보자. 이유는 그 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올 테니까. 나처럼 청소를 통해 힐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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