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나 기사에서 자살 소식을 접하는 일이 흔하다. 내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나는 힘들 때 ‘죽고 싶다’라기보다는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죽을 용기도 없다. 하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세상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어려움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그냥 사라지고 싶다.’
그러다 곧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싶다가도, 다시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라는 자책이 밀려온다.
내 잘못으로 인해 힘든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변하고 노력해서 해결해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받거나 내 능력 밖의 문제에 부딪힐 때, 특히 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내가 이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흔히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고 말한다. 나도 안다. 어차피 지구는 자전하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내 상황이 정말 나아질까? 시간이 지나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버티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걸 내게 확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힘든 순간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결국 버틴 끝에 나아진 사람들만 ‘곧 좋아지더라’고 말하기 때문은 아닐까. 여전히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은 나아짐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 정말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감정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이 정말 나아지는 걸까? 상황은 여전히 힘든데, 그저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내려놓는 것도 쉽지 않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르는 어려운 기억에 다시 무너질 때가 있다. 만약 이 힘듦이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여전히 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그래서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감자로 태어나고 싶다.
내가 감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면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지만, 나는 진심이다. 땅속에 묻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수명 동안 햇빛과 양분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싶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체중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다. 오히려 통통 해지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가만히 통통 해지는 건 자신 있다.
게다가 죽고 나면 맛있는 요리가 되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다. 일종의 장기 기증처럼 선한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수확이 된다면, 이왕이면 갓 튀겨져서 뜨끈뜨끈한 양념감자가 되면 좋겠다.
감자로 태어나면 외롭지도 않을 것 같다. 땅속에서 감자 가족, 친구, 이웃들과 함께 자랄 테니까. 게다가 꽃이나 나무 열매는 바람에 흔들리고 비와 눈을 맞으며 불안하게 살아야 하지만, 나는 그저 땅속에 묻혀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만약 중간에 짐승에게 먹히거나 썩어 죽는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내 삶이 항상 불안하고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즐거운 일도 많고, 감사한 순간도 많다. 다만, 이 모든 걸 겪고 나니 이번 생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야 하는 거창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그저 태어났으니,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한 번쯤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분명 삶이 벅차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힘든 상황 속의 나는 어떤 위로의 말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지금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나처럼 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까지 버텨온 나도, 그리고 너도 정말 대단하다는 것.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언젠가 우리를 덜 아프게 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