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우리는 신을 어떤 존재라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무성의, 무색-무취의, 고결한, 때 묻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창세기의 신은 다르다. 누군가와 회의하고, 세상의 모습에 한탄하고, 인간이 하는 일이 잘 이뤄지지 않게 흩어놓기도 하는 존재가 창세기의 신이다. 이런 신의 모습은 어쩌다 인간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일까. 아마도 중세를 거치면서, 이원론이 들어오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연구가 필요하다.
창세기 11장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이 세운 바벨이라는 성읍과 탑이 서지 못하게 한다. 벽돌과 아스팔트로 지은,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을 써서 만들었을 이 성인지, 탑인지, 공동 주택인지 하는 것. 홍수 후라서 땅이 질었을 테니 벽돌 만들기가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벽돌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지도. 어쨌든 인간의 바벨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여기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혼자 활동하지 않는다. '우리'라는 존재와 함께 내려와 인간이 하나 되는 걸 막는다. 그 우리는 누구일까, 바벨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바벨이라는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 후대에 쓰인 걸지도 모른다.
당시에 언어가 하나였다는 기술은 믿을 수 없다. 아마 바벨에 동참한 그룹의 언어가 하나였을 것이다. 다른 민족은 다른 언어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는 바벨에 실패한 그룹이 온 땅에 흩어지게 되는데 자연스레 아브람의 족보로 이어진다. 뭔가 엄청난 세월을 뛰어넘은 느낌이다. 노아 홍수 후와 아브람의 시대까지 얼마나 간극이 클까. 아브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종의 '노아 에피소드'를 끌어왔을 수도 있다. 느낌뿐이지만.
신에 대해 다시 생각했으면 한다.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아니 아무 상관도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때론 장난도 치고, 화도 내고, 계획을 망치기도 하고, 후회도 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신이라면 인간과 신앙은 어때야 할까. 그런 존재가 신이라면 신앙이 성립하기는 할까. 고민해보면 좋겠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불가능하지 않나. 성경에는 아주 때 묻은 역사의 신이 쓰여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두서없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