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대해 고민했을 때, 사변적인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로 인한 결론, 그로 인한 변화, 그래서 뭘 어쩌자는건데? 철학은 해답이 아님에도 해답을 주는 이야기가 제게는 필요합니다. 그래서 철학을 생각할 때 저는 ‘인간의 조건’을 제일 먼저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Book
식당은 계속 운영되었고 청소 노역을 맡은 이들도 평상시처럼 일했고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들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녁 때까지 수업을 했다. 단, 그날 저녁 학생들에게는 숙제가 주어지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이 명백한 그런 밤이었다. 간수들도, 이탈리아 사람이건 독일 사람이건,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와서 직접 목격할 용기를 낼 위인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님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엎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 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 이것이 인간인가, 15p (프리모 레비)
Bee
모든 것이 끝날 날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 것입니다. 일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누군가를 키우고. 그렇게 우리는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 밤, 유대인들의 운명이 결정되던 밤. 그들도 모든 인간이 그럴 것이라 예상하는 방식으로 삶과 이별을 고했습니다. 기도와 술과 욕정. 양상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은 길을 유대인들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엄마’들이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씻기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살 길을 마련하려 애썼습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아기용품….끝이 죽음이든 삶이든 아이들은 하루를 보낼테고 그 말단에는 돌보는 이가 있습니다.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눈 앞에 자녀들이 있는데 현실을 설명해 내고 있을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부모는 어떻게든 살려냅니다.
Be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일상을 사는 인간,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도 오늘은 생명을 키워내야 하는 양육자. 사람은 다 비슷합니다. 프리모 레비는 앞으로 책에서 펼쳐질 극한 상황을 이야기 하기 앞서 인간의 한계이자 존재의 조건인 일상의 마지막 모습을 다룹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같은 조건을 가진 ‘인간’끼리 대체 뭘 하고 있는건가. 왜 어떤 이들은 감정 없이 누군가를 때리고 억압하고 죽일 권리까지 갖는가. 아니 왜 아무도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가.’ 프리모 레비는 말합니다.
코로나19로 어두운 매일과 ‘n번방 사건’으로 정말 이것이 인간인가 고민하는 비일상적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상을 유지해도 어느 하나 보너스처럼 오는 것도 없지만 곁의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감을 집어 들고 놀아야 하는 틈바구니 같은 시간들. 인간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는 지친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