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 대부분 부모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 갖지 못한 물건, 이루지 못한 꿈. 그게 무엇이든 부모는 아이에게 주고 싶어 합니다. 남쪽으로, 바다로 ‘불’을 운반하며 걷고 또 걷는 소설 ‘로드’ 속 아빠와 소년은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가진 적 없어 미련도 없는 심정을 나누지도 못한 채 해안을 서성입니다.
Book
아침에 불을 다시 피웠다. 식사를 하고 해안을 지켜보았다. 비를 맞는 차가운 광경은 북쪽 세계의 바다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갈매기도 없고 바다의 새도 없었다. 해안선을 따라 흩어지거나 파도 속에서 회전하는 까맣게 타버린 의미 없는 물건들. 그들은 떠밀려온 나무를 모아 쌓고 그 위에 방수포를 덮은 다음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우린 표류물을 줍는 신세가 되었구나.
그게 뭔데요?
해안을 따라 걸어다니면서 파도에 쓸려온 귀중품이 없나 살핀다는 거지.
어떤 걸 찾아요?
뭐든지. 뭐든지 쓸만한 것.
우리가 뭘 찾을 수 있을까요?
모르겠다.
한번 보자.
한번 봐요.
- 로드, 250p (코맥 매카시)
Bee
새를 본 적이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작품 속의 ‘아빠’는 ‘소년’에게 새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멸망한 지구에도 바닷가에 새 한 마리쯤은 있겠지 하는 작은 기대. 소년에게 줄 선물이 그런 것 뿐이었기에 아빠는 자기가 간직한 ‘일상이라는 풍경’을 소년에게 보여주기 위해 바다로, 바다로 향합니다.
그러나 잿빛 바다. 작품은 온통 잿빛입니다. 바다도, 숲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잿빛입니다. 어느 한 순간 희망을 발견하길 바라지만 ‘로드’는 아무 약속도 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럴 것 같습니다. 새가 없는 세상. 어쩐지 참 슬픕니다.
Be
우리가 물려줄 세상은 뭐가 없는 세상일까요? 맑은 공기, 마스크 없는 하루, 건강한 삶, 학교, 회의, 악수, 표정, 대화 이런 게 없는 세상이겠죠. 요즘 마스크를 쓰는 날이 많아지면서 사회적으로 표정 짓지 않아도 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가워지는 느낌입니다. 그저 평범한 것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게 슬픕니다. 좋은 것들을 다 놓친 뒤 ‘표류물을 줍는 신세’가 되지 않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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