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B] vol. 10 – 시원허니 좋다.

by 나성훈

Book

이슬비가 뽀실뽀실 온다


뽀시락뽀시락 비가 온다


끄끕하니 개작지근하다


온 들에가 다 떨어진다


온 곡식이 다 맞는다


곡식이 펄펄 살아난다


시원허니 좋다.


박점례 (곡성)


- 연필로 쓰기, 268p


섬에 포탄이 떨어져도 어머니는 기어코 살던 자리로 돌아와서 김장을 담근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이 김장을 담그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낮잠 자는 마을에 포탄을 쏘면 안 된다는 이치를 다들 스스로 알 터이다.


- 연필로 쓰기, 2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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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80세를 넘은 나이에 처음 한글을 배운 할머니의 작품입니다. ‘시원허니 좋다.’ 라는 시어가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생활에서 얻은 진솔한 언어. 그 언어가 주는 힘은 참 큽니다. 백마디 말보다 진심을 담은 한 마디가 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김훈 작가의 말처럼 인생의 고진풍파를 다 겪은 후 배운 언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어를 배우는 우리의 말과는 다를 것입니다. 추상과 관념이 지배하지 않는 언어 형식. 거기서는 살아있는 말만 나올 수 있습니다.


두번째 글은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진 후 피난 갔던 주민들이 돌아와 다시 살아가는 풍경을 그린 글입니다. 마을이 다 망가졌지만, 두고 간 김장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다시 김장을 하고 삶을 일구는 어머니들. 낮잠 자는 시간에 떨어진 포탄 때문에 부랴부랴 마을을 떠나야 했던 여러 가정과 아이들. 전쟁과 폭력은 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지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결국 모든 걸 파괴해야 끝이나는거라면 태어난 의미를 지속적으로 모독하는 게 됩니다. 인간은 살고 자라고 일하고 사랑하며 삽니다. 그걸 부인하면서 얻는 승리란 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문명을 발전 시키고 있는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시인’ 박점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우리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일이 이번 주말에는 생겼으면 합니다. 우여곡절에도 삶을 이어갈 모두를 위로할 멋진 일이 생기기를. 한 주간 수고한 님을 응원하며 letter.B 10화를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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