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B] vol. 16

– 하루도 잊은 적 없습니다.

by 나성훈

Book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급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에서,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애초에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누릴 수 없어서라기보다 불행의 상태가 지니는 복잡한 성질을 늘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차례대로 늘어선 그 불행의 이유들이 단 하나의 이름을, 가장 큰 이유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이유가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그 뒤로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비탄에 잠길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뒤로 또 다른 이유들이 줄을 서 있다.


그리하여 겨우내 우리의 유일한 적이었던 추위가 가시자 우리는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똑 같은 오류를 범하며 오늘 “배만 고프지 않다면!”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배가 고프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수용소 자체가 배고픔이다. 우리 자신이 배고픔, 살아 있는 배고픔이다. – 이것이 인간인가, 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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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예전에 겪은 일은 눈 앞의 현실에 비하면 작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현실을 잘 이겨내면 고통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두 달 전 한 수녀님과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Here & Now. 지금 여기에서 방법을 찾아야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지옥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오늘의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는 표현은 참으로 통찰력이 있는 말입니다. ‘정확히 원급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눈 앞의 일이 너무 크기에 인간인 그들은 당장의 고통을 겪는 일 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그런 상황 인지가 수용소의 하루 하루를 견디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걸 글로 풀어 쓴 작가가 정말 대단해 보이기는 합니다.


물론 고통의 원근법이 작동한다고 하여 총량이나 크기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배고픔인 수용소가 있는 한 허기도, 추위도, 고통도 변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그 수용소 자체가 없어져야 이들의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또한 수용소를 짓게 한 정신이 사라져야 이들의 고통의 뿌리가 그나마 옅어집니다.


올해로 세월호 6주기입니다. 유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존재하는 오늘의 고통이 가장 큰 고통입니다. 고통의 원근법은 존재하겠지만, 고통을 일으킨 뿌리, 그 정신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고통은 옅어질 수 없습니다.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처벌, 재발 방지 대책. 그리고 그 전에 생명보다 다른 걸 더 중요시 하는 이 나라에 만연한 태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국민의 아픔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우슈비츠는 끝났습니다. 세월호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문제의 뿌리를 완전히 드러내 이 나라에, 아무에게도 다시는 이런 고통이 생기지 않게 해야겠습니다.


Remember 0416, 하루도 잊은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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