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 이것이 인간인가, 187p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다 보면 그가 겪은 일이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덤덤한 문장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마치 작은 사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집이나 회사, 사회 생활 중에 겪는 일을 쓰듯 그는 죽음을 기록했습니다.
작가가 생각하고, 변화를 겪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에게 불행이 오지 않길 바라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변화도 찾아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변화 없이 그가 이 상황에서 잘 적응해 생존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이어도 말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도 죽음 이외에 다른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는 당연한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합니다. 갇힌 이들은 눈치 보고, 반목하고, 민간인들과 몰래 교류합니다. 이상할 정도로 평범한 순간도 비취는데 그걸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감정 없이 대한다는 것, 기계적으로 누군가를 죽이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 서로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얼마나 부질 없고 우스운 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인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통제하는 시스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 내에서 교류한 ‘민간인’ 중에는 로렌초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와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나오지는 않습니다. 로렌초라는 인물은 아주 평범한 선을 행함으로서 아직 세상은 살아갈만하고, 수용소 밖에도 희망이라는 게 있다는 걸 작가에게 알게 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로 작가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특별한 보상이 없어도 제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세상의 가능성’을 상기 시키는 존재. 사회가 유지 되는 건 아무래도 그런 한 사람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로렌초’처럼 아직 세상은 살아갈만한 곳이라는 의미를 전달해 주는 평범하고 착한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요? 아무 보상도 칭찬도 없이 평범하게, 위대하게.
평범하고 위대한 하루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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