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B] vol. 23 - 우선은 실리.

by 나성훈


Book

성균관 유생들도 들고 일어나 빨리 용골대 등의 목을 베고 서신을 소각하라고 촉구했다.


3월 1일, 인조는 팔도의 백성들에게 유시문을 내렸다. ‘정묘호란 때는 부득이하여 임시로 화친을 허락했다. 하지만 오랑캐의 욕구는 날로 커져 이제 우리 군신이 차마 들을 수 없는 말로 협박하고 있다. 이에 강약과 존망을 돌아보지 않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니 모든 사서들이 힘을 합쳐 난국을 헤쳐 나가자’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 병자호란 2권 42, 45p


12866_1587998573.jpg


월요일 밤입니다. 한 주가 또 시작 되었네요. 일주일의 시작을 각자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지난 주에 못한 일을 점검하고 여러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몇 건 하니 하루가 훌쩍 지났습니다.


‘병자호란’은 2권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1권에서는 병자호란 이전에 조선 내외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주로 설명했습니다. 후금과 명의 전쟁, 조선과 후금 사이의 정묘호란, 왜란 이후 끊임 없이 조선을 신경 쓰이게 하는 왜 와의 외교 문제까지 다방면에서 다양한 사건이 조선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후금은 명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누르하치에 이어 권력을 잡은 홍타이지는 특유의 지략과 용맹함을 앞세워 명을 압박했습니다. 명나라의 신하를 자처하던 조선의 입장이 애매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력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후금과 형제 지간이 되긴 했지만, 조선은 후금이 멸망하기만을 바랐을 것입니다. 조선의 기대와는 달리 후금의 위세는 커져만 갔고 징기스칸의 후예를 자처하는 ‘차하르 몽골’까지 복속해 왔습니다. 차하르 몽골이 갖고 있던 원나라의 옥쇄까지 손에 쥐게 된 후금은 이제 본격적으로 조선을 압박합니다.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세상을 지배하고 싶었지만 스스로 항복하지 않는 조선이 버티고 있는 한 그들의 권위는 허한 편이 됩니다. 후금이 정복한 민족들까지 사신으로 보낸 홍타이지는 ‘용골대’를 통해 조선이 자기들에게 귀의하길 강요합니다. 하지만 명분에 죽고 명분에 사는 조선 유생과 선비들은 힘의 강약은 따지지 않고 후금과의 관계를 끊으려 합니다. 왜도 여전히 남쪽 지역을 괴롭히고 있는 상황에서 참 당황스러운 선택입니다.


인조 정권의 부실은 실제로 가진 건 하나도 없으면서 명과의 의리라는 명분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존망까지 걸었던 데서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 명나라의 은혜를 기억하고, 유교적 전통을 고수하려면 일단 나라가 스스로 서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소수 권력층의 자존심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무너집니다. 세금과 노동력 제공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고통은 한 치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인조 정권은 실리를 붙잡아야 했습니다. 허울 좋은 명분이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따질 건 따지고 살 길을 찾은 후에 의리든 뭐든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합니다.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운명처럼 우리들의 일상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이쪽 막으면 저쪽이 터지고, 저쪽 막으면 이쪽이 마릅니다. 그 와중에 새로운 문제꺼리도 생깁니다. 진퇴양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롭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한쪽 루트를 명확히 뚫어야 합니다. 조선의 경우로 생각해보면, 모든 걸 잃을 각오로 후금과 전쟁을 치르던지, 명과의 관계를 확실히 끊어야 했습니다. 그게 어렵다면 일본의 활동에 대한 단속이라도 단단히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인조 정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강화도로 숨어들 생각만 했습니다.


아마 날마다 여러 선택지가 자기 앞에 놓일 것입니다. 그때는 일단 온 힘을 다해 살고 볼 일입니다. 살아나면 다음 길이 보입니다. 아니면 어떤 선택이든 하고 그것을 밀고 가야 합니다.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생이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 직전의 조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도망갈 궁리만 했습니다. 현실을 볼 줄 모르는 유생들은 싸움을 위한 상소만 올렸습니다. 그것은 무능한 정권의 역사만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공동체와 개인은 또렷하게 선택하고 온 힘을 다해 사는 게 최선입니다. 피해자 입장에 선 적이 많은 조선의 역사에서 우리 개인의 하루라는 역사를 돌아봅니다.


letter.B 뉴스레터 구독하기

월-금, 책 이야기를 전합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62409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letter.B] vol. 22– 길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