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물론 공포정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거기에 저항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독일 국민은 전체적으로 저항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그런 무지가 나치즘에 동조하는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입과 눈과 귀를 다문 채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자신은 자기 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공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이것이 인간인가, 273p
짧은 연휴를 앞둔 밤입니다. 쉬지 못하는 분도 있겠습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쉴 수 있길 바랍니다. 5월 1일은 노동절입니다. 노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독서도 끝이 보입니다. 이 책의 뒷 부분에는 부록이 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에 대해 책을 쓴 이후에도 사람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기에 독자들에게 대답하는 형식으로 글을 덧붙인 것입니다. 아무래도 설명 글이기 때문에 증언 위주의 앞 부분 보다 더 몰입도가 있었습니다. 부록 부분에서 비로소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의문이 풀렸습니다. 프리모 레비가 겪은 고난에 비해 그의 글이 왜 이렇게 담담하고 담백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 책에는 감정 과잉한 부분이 없습니다. 독자에게 답하는 부록에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정보나 다른 사람에게 흘러 들어온 이야기는 담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통의 한 면을 담담히 드러내고 자신과 비슷한 증언자가 나타나 또 한 면을 드러내고....작가는 여러 민족이 겪은 고통을 한 사람의 소유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책 말미의 성찰은 뼈 아픕니다. 비단 독일인 뿐 아니라 비슷한 환경에 놓였다면 어떤 나라 국민이라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약하고 악한 존재인가 봅니다. 우리 안의 악을 직면하고 그 악이 활개치지 못하게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진실, 모른 척 하고 싶기 때문에 모르는 것. 가까이는 세월호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에 대해 자세히 알기 싫은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리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기에 공범자가 아니라는 환상. 어쩌면 그 환상으로 일상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도적 무지가 내 문제가 될 때. 내 문제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할 때. 그런 생각을 한다면....
짧은 연휴를 시작합니다. 이 기간에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고생하는 환자들, 의료진들, 공무원들. 각박한 노동 환경에 처한 모든 분야의 일하는 이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정으로 마음 한 번 쉬기 힘든 우리 시대의 모든 이들. 그들에 대한 의도적 무지를 한 번쯤 걷어내 보면 어떨까 합니다. '누가 못 쉬는가'
이제 이걸 고민할 때입니다.
letter.B 뉴스레터 구독하기
월-금, 책 이야기를 전합니다.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62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