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하기 위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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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학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소. 뜻도 모르고 웅얼거리고 의관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국도를 건설하고 군현을 구획하며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세금을 경리하는 것은 과연 누가 담당한단 말이요?......귀국의 인심과 군비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장유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십시오!
- 병자호란 2권, 75p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컴플렉스가 있다면, 그 많은 책을 읽어 다 어디에 쓰냐는 물음 앞에 아무 말도 못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꼭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독서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실용적이지 않다면 대체 뭐하러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입력을 했으면, 출력이 있어야지 출력 없는 상태에 사람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않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이런 부분에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책 읽어 봐야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날카롭게 전략을 짜지도 못하고, 취업이 잘 된다거나, 협상에서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 경우가 더 많죠. 머리에 든 게 많으면 말을 함부로 못하게 되니 우물쭈물 할 때가 대부분이고, 책 읽는 사람이 취업 시장에서 살아 남는 경우는 그 사람이 독서 이외에 다른 재주가 출중할 때 뿐입니다. 협상 역시 실전 경험이 중요한 영역이라 독서 하느라 사람 만날 일이 부족한 경우에는 오히려 불리하죠. 제가 대체로 그런 경우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책 읽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책만 읽으면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보완이 필요합니다.
날로 강대해 가는 청나라의 위협 앞에 갈팡질팡 하는 인조와 신료들을 본 명나라의 황손무와 심세괴는 자신들 역시 청나라를 상대로 싸우고 있음에도 조선에게 충고합니다. 태도를 정확하게 정하지 않으면 강대한 나라를 이기기 어려울거라고. 학문을 배우는 건 세상을 경영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일을 돌아가게 하고, 배운대로 한 판 실천해보기 위함인데 당신네 나라 관료들은 뜻도 모르는 말을 웅얼거리기나 하고 실질적인 대책은 아무 것도 내놓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나라 운명이 풍전등화여도 명분론만 앞세우고 집안 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이들에게 정신 차리라 한 것입니다. 명나라 자체도 청의 공격에 위태한 상황이었는데 조선 조정을 보고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조선의 상황이 심각해 보이기는 한 모양입니다.
'경학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하기 위함인데'
배워서 쓸 데 있고, 배워서 남주는 독서와 공부를 꿈꿉니다. 실용서만 읽자는 말이 아니고 무슨 책이든 깊이 읽고 공부했다면 실생활을 이롭게 하는 데 써봐야 오히려 독서가 더 깊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배우고, 내일 실천해서 피드백을 통해 선순환을 만드는 것. 시간 내어 책 읽고, 자료 조사하고, 공부하는 걸 의미있게 만들 것입니다. 실용이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이롭게 하지 못하는 공염불 같은 독서를 하고 있다면 여러모로 재고해봐야겠습니다. 개인 공부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에도 적용되겠죠.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깊은 독서와 실천! 그런 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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