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B] vol. 27

악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것.

by 나성훈

Book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증오심의 근원에 대해 많은 글들이 발표되었다. 일반적으로 히틀러가 전 인류에 대한 증오심을 유대인에게 쏟아냈다고 말한다. 그는 유대인들에게서 자신의 결점 몇 가지를 찾아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증오하면서 스스로를 증오했다는 것이다. 그의 폭력적인 적대심은 자신의 혈관 속에 '유대인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탄생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이런 설명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적 현상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돌려 설명한다는 건 옳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한 개인의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행동의 동기들을 해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가정들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을 변명하며 죄의 양이 아니라 질을 설명한다. 나는 솔직히 히틀러와 그의 뒤에 있던 독일의 광적이 반유대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한 몇몇 진지한 역사학자들 (블록, 슈람, 브라허)의 겸손함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일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되어서도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정당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 말은 이런 뜻이다. 인간의 의도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원학적으로도)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 그 행동의 주체를 수용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정상적인 인간 중에서 히틀러, 힘러, 괴벨스, 아이히만 등등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들의 말 (이는 안타깝게도 행동으로 옮겨졌다.)이 이해불가능하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기도 하니까. 사실은 그것들은 인간적인 말과 행동이 아니다. 역사에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고, 생존을 위한 가장 잔인한 생물학적 투쟁과도 비교가 어려운 것이다. 전쟁을 이런 투쟁과 연결짓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는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전쟁의 극단적인 행태가 아니다. 전쟁은 항상 끔찍한 사건이다. 유감스러운 사건이지만 우리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전쟁에는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다. 그 증오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다. 파시즘이라는 유해한 나무에 열린 유독한 열매지만, 파시즘 밖에 그것을 뛰어넘은 곳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또다시 유혹을 당해 명료한 상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인간인가 3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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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이해하기 거부할 때, 또다른 악의 씨앗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하려 애쓰는지도 모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은 이해하길 거부하는 게 정의를 위한 최소한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는 히틀러와 독일 정부가 저지른 악행이 그렇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각종 범죄들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범죄자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피해자의 고통과 재발 방지, 가해자에 대한 정확한 처벌입니다. 그것이 악을 이해하기 거부하는 첫 걸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안에 악이 있음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인류가 여태껏 저질러 온 일들도 그렇고, 오늘 하루만 해도 얼마나 많은 악을 저질렀는지 속으로 생각해보면 자유로울 사람이 몇 없을 것입니다. 꼭 히틀러 같은 '드러난 악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인식하기'를 그만 두면, 역사와 개인에게 내재한 악은 슬그머니 머리를 들 것입니다. '내게도 악이 있다, 우리에게는 악함이 존재한다.' 라고 기본 전제를 깔고 생각해야 그나마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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