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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Jun 28. 2020

[letter.B] vol. 31 - 길은 여기에


Book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거지가 될까 하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거지의 말은 사람들에게 결코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아무도 거지의 말을 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단 높은 데 서 있는 교사의 말은 순진한 아이들이 아무 의심도 없이 믿어버린다. 다른 사람이 믿어주는 것의 책임을 나는 패전을 통해서 말 그대로 통감한 것이다. 거지가 되어 어떤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숨어서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 해독을 끼칠 염려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로서 학생들에 대한 사죄라고도 생각했다. 


- 길은 여기에, 25p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온라인 서점


비교적 오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미우라 아야코의 '길은 여기에' 독서를 시작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빙점'이라는 소설로 유명합니다. 기독교인이고 그의 정서적, 신앙적 여정을 적은 것이 '길은 여기에' 라는 책입니다. 패전 후 일본 지식인이 자기 자신과 국가를 돌아보며 생각한 결과 나온 글 중 하나입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길은 여기에'를 읽으며 우리 시대에 이제는 사라진 '성찰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려 합니다. 진지하게 살면 비웃음을 사는 시대.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진지한 사람이 이끌어 갔습니다. 진실한 이라고 하면 더 맞을까요? 어떤 일에 천착하지 않고 일이 이뤄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 지식인의 자세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작가는 또한 기독교인입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사랑했던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의 목마름이 우리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 자유에 닿기를 바랍니다. 


17세에 교사가 된 미우라 아야코는 패전 후 자신이 가르치던 것을 의심하고, 부인해야 하는 상황에 당황합니다. 자신이 잘못된 것을 가르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영향력' 자체를 제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할 바에야 거지가 되는 게 낫다는 심정. 이해가 갑니다. 때로는 저도 아무에게, 아무 해도 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책임도 지지 못할 일을. 그래서 산으로 숨어 버리고 싶습니다. 나나 잘 살고, 못 살면 되지 다른 사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성찰할 줄 알고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하는 미우라 아야코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하고 더뎌도 바른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길은 여기에'가 전하는 진중함 속에 들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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