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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Dec 10. 2020

vol. 52 - 고액 상금의 시대

소설상을 받는 건 오랜 꿈이었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기 보다는 소설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상에 따라오는 상금, 명예, 그 뒤로 편히 풀릴 것만 같은 인생을 갖고 싶었습니다. 이미 회사원으로 성공하긴 글렀고, 성격도 조직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저는 문학상을 받고 싶었습니다. 한번에 그 모든 불신과 우려의 눈길을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작가들이 보면 한심한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나름 절박한 소원이었습니다. 


글 재주는 있었습니다. 나름 글 잘 쓴다는 말을 들으면서 컸습니다. 문제는 소설과 문학은 글 재주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은 그 장르를 좋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알량한 독서 이력으로 적당한 글 재주를 부리면 소설 따위 한순간에 써서 당선될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소설은 읽어온 내력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문학인인척 한다고 문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논픽션. 그리고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내 장르는 그것이었습니다. 


소설상을 받고 싶었던 건 당시 문학상에 수여하는 상금이 컸기 때문입니다.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에서는 그 사실을 다룹니다. 


'1997년 1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신인 작가 장편소설 등단 새 흐름'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장편 소설을 통한 문단 입문 현상이 최근 문학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신인 작가들이 신춘문예를 거치지 않고 문예지의 장편공모나 단행본 출간 등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는 것. 이 같은 현상은 1990년대 들어 더욱 활성화돼 신춘문예 등단-문학 수업-장편 쓰기의 과정을 정통 문학 코스로 여기던 1980년대 이전 상황과는 큰 대조를 보여 관심을 모은다.


~꼭 일주일 뒤에 실린 동아일보 1997년 1월 21일자 기사도 보자. 제목은 '문학상 고액 상금 시대다.' 


당시 생각해보면 문학상 상금이 5,000만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큰 돈을 받고, 단행본을 내주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찌글찌글한 인생을 한 번에 뒤엎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물론 당선되기만 한다면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장편을 쓴다는 건 인생을 바쳐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재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지요. 애정과 헌신, 시대와 운이 만나 맺히는 열매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아쉽게도, 당연하게도. 


그럼 무슨 글쓰기를 할 것인가. 더이상의 고액 상금도, 명예도 없다해도 글쓰기를 지속할 것인가. 이유는 무엇인가. 여전한 화두입니다. 다만 내가 글쓰기를 바라고, 하루에도 틈틈이 뭔가 계속 말하고 있기에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을 통해 어딘가 닿을 곳이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선도, 계급도 얻지 못해도 내가 애정하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면 재주를 헛되이 쓰지는 않는 것이겠죠. 글은 계속 쓰겠습니다. 더듬거리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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