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누가 탈 수 있단 말인가. 유모차가 아닌 다른 차가 탈 수 있나, 아니면 자전거나 말 같은 이동수단이 탈 수 있나. 에스컬레이터는 본래 오르내리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닌가. 내가 그 목적을 몰라서 이러는 건가. 유모차를 끌고 타면 넘어질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어서 막는 것이겠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유모차로 어딘가 다니는 일은 참 힘들다. 엘리베이터도 타기 편한 위치에 있지 않고, 지하철 공간도 좁은 편이다. 지하철 문과 탑 승선 사이 공간도 무섭고. 그 고난을 뚫고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바깥인데 에스컬레이터에 봉까지 두고 유모차 탑승 금지를 붙이는 건 좀 가혹하다. 힘들긴 정말 힘들단 말이다.
유모차와 비슷한 상황인 휠체어를 생각해본다. 유모차가 힘들면 휠체어도 힘들다. 이 사회는 약자가 살기 너무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버스도 저상버스가 드물고, 장애인 택시는 아주 조금밖에 없다고 한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타지 못하는 에스컬레이터라. 애초에 교통 약자를 중심으로 설계했으면 어땠을까? 공간을 차지하고 다른 사람들은 조금 걷거나 돌아가더라도 비로소 함께 사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유모차를 밀고 보행로를 가도 마찬가지다. 울퉁불퉁하고 턱이 많다. 유모차야 힘으로 밀어 어떻게든 간다지만 휠체어는 배 이상 힘이 필요할 것이다. 유모차 다니는 길에는 자전거도 다닌다. 특히 학생들이 앞뒤 보지 않고 모는 자전거는 공포의 대상이다. 왜 이런 현실에 약자들이 맞춰야 할까? 처음부터 조금 더 섬세한 시선으로 도시의 기반 시설을 설계했다면 지금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유모차, 휠체어만 탑승 가능. 그 말을 보는 게 꼭 꿈은 아니지 않은가.
얼마 전에는 유모차를 멈춰 두고 건물 에스컬레이터 옆에 서있다가 직원에게 "통행에 방해되니 비켜 달라"는 말을 들었다. 그 안에 아이가 타고 있는데 말이다.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관용을 발휘해서 사람들이 살짝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자기들도 모든 걸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을 것 아닌가. 아니면 다른 말로 해줬으면 어땠을까. 여기 유모차와 아기가 있으니 다른 분들은 조금만 양해 부탁드린다고. 너무 이기적인가. 그 자리에 휠체어에 탄 사람이 있었어도 그랬을까.
유모차 탑승 가능한 에스컬레이터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안전장치를 하고, 덜 힘든 사람들은 계단으로 다녔으면 좋겠다. 설계단계부터 가장 불편한 점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지하철도, 도로도, 계단도.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다니는 일이 사회의 짐짝처럼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모차만 탑승 가능', '휠체어만 탑승 가능' 이렇게 쓴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약자 위주로 설계된 도시. 그 아름다운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