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통통이란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말 그대로 ‘팥’으로 구성된 아이스크림이었다. 어린 입맛에는 별로였는데 아빠가 좋아해서 심부름을 많이 했다. 요즘도 나오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슈퍼에 가면 기본값으로 있었는데….
아빠는 조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림도 그렸다. 나무도 잘랐다. 이것저것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산에 가서 그럴듯한 돌을 주워오고, 그것을 가족들에게 공유하는 게 일상이었다.
여름날 한창 더울 때면 아빠는 집 앞에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빼빠질’을 했다. 그때는 무조건 ‘빼빠’라고 불렀는데 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명칭은 ‘샌드 페이퍼’였다. ‘쓰레빠’를 ‘슬리퍼’라고 부르는 게 약간 낯간지러운 느낌처럼 ‘빼빠’는 ‘샌드 페이퍼’가 될 수 없었다. ‘빼빠질’에 더울 때면 아빠는 내게 파시 통통을 사 오라고 했다. 다른 아이스크림도 있는데 그것만 주문했다. 그놈의 파시통통, 맛도 없고 귀찮은 일이었다. 가끔 맛있었다.
파시통통을 사러 집 앞 작은 슈퍼에 주로 갔다. 그런데 어느 날은 조금 더 걸어 대형 할인마트에 갔다. 이마트나 월마트 같은 규모는 아니고 시장에 있는 할인 마트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큰 규모의 마켓이 별로 없던 때였는데, 규모가 큰 만큼 물건 찾기도 힘들었다.
“아이스크림 어디 있어요?”
“(내 턱을 잡고 살짝 돌리며) 쩌어기로 쭉 가면 있어.”
그 큰 마트 주인 놈이 내 턱을 잡고 아이스크림 있는 곳을 알려줬다. 목이 아팠다. 집에 와서 일렀다. ‘빼빠질’을 하던 아빠는 흰 러닝 차림 그대로 그 마트로 갔다. 고성이 오가고, 여름날은 또 여름날대로 그대로였다.
평소에 화내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아빠가 나를 대신해 소리 질러줘서 좋았다. 싸움을 이기거나 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대신해 소리 질러줄 사람이 있다는 것. 어린아이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파시통통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종되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저기 큰 마트도 많다. 시장에 자리 잡은 할인마트가 크게 보이지도 않는다. 물건을 못 찾는데 불친절하게 대답하면 그냥 나오거나 대거리 한 두 마디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소리 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때는 나도 앞뒤 안 가리고 뛰어가야지. 소리 질러야지. 부당한 대우받고 살지 않게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