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창세기 4장부터는 본격적인 인간의 역사가 나온다. 창세기에서 모든 인류의 역사를 다룰 수는 없었을 테고 일부 취사선택된 역사, 그러니까 편집된 역사가 나온다. 주인공은 가인과 아벨, 마무리로 셋이 나오는데 분량만 보면 중요한 인물이 아닌데도 전통적으로 아담 가문의 본류로 여겨진다. 어떤 합리성을 위해서는 이해되지만 가인과 아벨의 일화에 비해 셋의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 걸 보면 약간 균형을 잃은 시각처럼 보인다. 옛사람들은 세 명 모두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가인은 아담의 첫아들이다. 본문상으로는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진짜 첫째인지, 둘째인지 알게 뭔가 싶다. 앞에 언급한 대로 창세기에 모든 역사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데, 그때 '그렇게 가혹한 벌을 내리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은 가인 당시에 다른 인간들이 존재했다는 말일 수 있다. 물론 죄지은 이후 인간이 갖게 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 수는 있지만, 가인이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룬 걸 보면 가인과 동시대에 다른 인간들이 존재했고, 그러니 가인이 첫째라고 명확히 말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이 부분이 궁금했는데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모르니까 그럴 테고 도그마에 빠져 있으니 유연한 시각으로 본문을 보기 어려워서 일 수도 있다. 만약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창세기를 볼 수 있다면 성경의 창조관에 대한 시각도 다채롭고 유연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논의의 폭도 분명 더 깊어질 것이다. 고대 문서가 주는 상상력을 마음껏 활용하면서 말이다.
아벨은 창세기 4장의 주인공이긴 한데, 비중이 크진 않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으셔서 인정받은 존재처럼 나오긴 하지만 이내 형 가인에게 죽고 만다. 그리고는 아벨의 자리를 셋이 물려받게 된다. 아담, 아벨, 셋 순으로 이어지는 정통 스토리. 어쩌면 그런 걸 얻고 싶었을 것 같은데,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꼭 정통 계보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기껏해야 인간 역사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의 후손들 이야기가 많다. 가축을 기른 사람, 악기를 연주한 사람이 나온다. 라멕이라는 걸출한 악당도 나오는데 호기롭게 자기를 나쁜 놈이라 말한다.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나 보다. 그러니까 이들도 역사상 나름 위치를 차지했는데 큰 주목받지 못하고 편집에서 제외된 거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인류 역사 초창기에 관한 편집된 역사.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다종 다양한 편집된 사람들은 각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성경 이해와 신앙에 대해 생각할 때 놓치고 있는 부분이 이런 것들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경직된 문화와 사고, 교리 속에 잃어버린 창세기의 리듬과 풍요, 놀라운 이야기들을 내 생각에, 삶에, 신앙에 먹고 싶다.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