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장
참 뭐랄까 모욕적인 하루였다. 내가 하는 일이 하찮고, 하찮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내가 난감한 그런 날이었다. 그런 심정을 어디다 표현도 못하고 해야 될 일을 하며 하루를 또 하루 같이, 감정을 버텨내며 보냈다. 힘든 날이었다.
창세기 3장에도 '우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에덴동산에는 아담과 하와 이외에 하나님과 하나님을 위시한 다른 존재들이 있었던 거다. 아니면 하나님이 스스로를 복수로 표현한 걸 수도 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이후에 그룹과 불 칼이 동산 동쪽을 지키게 된 걸 보면 '우리'의 범주에는 그룹 같은 영적 존재나 불 칼 같은 하나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들어간 건지도 모른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은 이후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생뚱맞지만 부모로서의 사랑 같다. 누군가는 그때 하나님이 처음으로 동물을 죽였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좀 과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문자 주의적으로 해석하니까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고 하는 거다.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을까 우려되어 아담과 하와를 동산에서 쫓아내셨다니 좀 이상한 기분이다. 생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와 생명나무, 하와와 하와 트리. 원문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대강 이런 느낌인데, 일종의 대구를 이룬 게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본격 고난의 길로 들어선 아담과 하와. 그 이후로 사는 게 쭉 다 이렇게 힘든 건지도 모른다.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