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었습니다. 꼰대는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주세요. 자, 지금부터 당신들은 모두 동료입니다. 단 한 사람도 시민에게 발각되지 않고 편안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로를 지켜주고, 다독여주고, 응원해 주어야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당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꼰대 사회와는 다른 "시민들의 직장 내 행동 패턴 10가지"를 설명할 테니 잘 듣고, 실수 없이 시민사회에 스며들기 바랍니다. 당신이 꼰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직장생활이 몹시 곤란하여 생계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목숨을 걸고 지켜 나가야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칙이며,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시민들은 나이와 경력, 연차와 관계없이 직장에서의 모든 동료는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강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의식은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요즘 시민사회의 많은 기업에서 직급을 없애고, "님" 호칭 혹은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간혹,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며 교묘하게 상대방을 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시민들은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 또한 꼰대로 의심하고 경계합니다.
당신이 존중받고 싶다면, 상대방을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게 시민 사회의 기본적인 룰입니다. 만약 당신이 꼰대 사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나이 어린 시민에게 반말을 하려 한다면, 그 시민이 당신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참아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시민은 기본적으로 직장동료들과 대화를 길게 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는 시민 둘을 보았다면, 그 둘은 단순한 직장동료가 아니라 이미 친구입니다. 입이 근질거려서 눈치 없이 그 사이에 끼려고 했다가는 즉결 처형입니다.
시민들은 특히, 혼자서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을 바로 꼰대로 인식합니다. 회의시간에도, 식사시간에도 본인의 생각과 의견을 3분 내외로 정리하여 말할 수 있도록 항상 두뇌를 풀가동하기 바랍니다. 당신의 독백이 5분 이상 진행되었다면 당신은 원아웃입니다. 쓰리아웃이 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직장에서 5분 이상 혼자서 말하기가 용인되는 시간은 오직 주간회의나 월간회의 때의 발표, 혹은 고객 PT 때뿐이란 걸 명심하세요.
무의식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핸드폰 바탕화면에 타이머 어플을 깔아 두고 본인이 말할 때마다 시간 체크를 하시기 바랍니다. 매번 핸드폰을 꺼내고 세팅하는 게 번거롭다면, 5분짜리 작은 모래시계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민들은 내 감정이 중요한 만큼, 상대방의 감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이나 업무 성과가 본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앞에서 함부로 지적질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성장을 위해서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다."와 같은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시민들은 내 성장은 내가 알아서 책임지고, 당신의 어쭙잖은 지적질이 조직의 발전에 더욱 큰 방해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적질이 아니라 조언이라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조언도 해 줄 수 없냐고요? 그렇습니다. 시민들은 조언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허락 없는 조언은 잔소리일 뿐입니다.
더 이상 조언은 나이 많은 사람, 경력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의 특권이 아닙니다. 꼰대들은 조언이 필요한 상황에 조언을 하는 게 아니라, 입이 근질근질할 때 입가심으로 조언을 한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고, 다년간의 격렬한 시민운동을 통해 "조언 거부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이 문화를 당신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참기가 어렵다면, 조언을 안 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각오라면 '감히 조언을 드려도 될지' 허락을 구하십시오. 오직 허락받은 자만이 조언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은 회식 또한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녁 회식은 야근이며, 야근수당을 줄 게 아니라면 회식은 저녁에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회사 돈으로 공짜밥, 공짜술 먹어서 아끼는 돈의 가치보다 직장이라는 사회적 공간을 벗어나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서 얻는 회복감과 안도감의 가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당신 머릿속에 여전히 '직장동료들과 술 한잔 하면서 친해지는 거다.'라는 생각이 남아있다면, 당신은 시민사회 적응이 몹시 어렵습니다. 시민들은 직장동료와 굳이 술까지 마시면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사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저녁도 먹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그중에는 분명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당신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아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면 됩니다.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말을 5분 이상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신 또한 그들의 말을 5분 이상 들어주어야겠지요.
시민사회로 오기 전 꼰대 사회에서는 서열 높은 꼰대일수록 자기 할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싹둑싹둑 잘라먹는 파렴치한들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상대방이 헛소리를 하거나,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정치 이야기로 분위기를 흐리더라도 그 사람의 말을 함부로 끊지 않습니다. 그냥 딴짓을 합니다.
그 사람은 혼자 말하게 놔두고, 옆에 있는 다른 사람과 화제를 바꿔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핸드폰을 봅니다. 자리를 잠깐 피했다가 돌아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누군가가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말을 함부로 끊으려 들지 말고 그냥 딴짓을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꼰대가 아니고 시민이라면 즉각 자신의 행동을 멈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간다면 그 사람은 꼰대 수칙을 잠시 잊은 당신의 꼰대 동료이니 눈치를 주어 적당히 멈추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요즘 다양한 신조어, 줄임말들이 시민사회에서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는 꼰대들에게 신분 노출의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교묘하고 지속적으로 꼰대들을 테스트하는데, 새로운 신조어나 줄임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일상 대화에 녹여내면서 꼰대 의심자들의 반응을 살핍니다.
이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는 순간 당신의 정체는 탄로 납니다. 그러니 의미를 모르는 새로운 표현이 들리면 당황하지 말고, 핸드폰을 들어 검색을 하시기 바랍니다. 시민 사회에서는 대화중에 핸드폰을 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에 아무도 당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전달사항이 있는데, 당신이 먼저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입니다. 당신 귀에 들어올 정도의 신조어라면 이미 철 지난 표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민 행세를 하겠다고 어설프게 신조어를 구사했다가 정체가 탄로 난 꼰대들이 여럿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꼰대 사회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친해졌다 싶으면 자신의 사생활을 터놓고, 상대방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꼰대의 본능을 철저히 억제하는 인내와 단련이 필요합니다. 회사에서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있고, 대화를 자주 나누며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그건 회사 업무와 관련된 것이지 당신의 사생활까지 궁금한 건 아닙니다.
밥 먹다 말고 갑자기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서 당신 아이의 사진을 보여준다거나, 10년 전 신혼여행 사진을 보여주는 등의 행동은 매우 위험합니다. 꼰대 사회에서 직장동료 간의 친분을 과시하는 행위였던 가족 모임, 가족 전화 연결 등의 행동은 치명적입니다.
필자는 2년 전, 처음 시민사회에 들어왔을 때,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회사 워크숍에 아이들을 데려와도 되냐고 물어봤다가 시민들에게서 받은 경멸과 살기 가득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생활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시민 동료들에게 SNS 1촌 신청을 하는 행위는 불허합니다. 앞서도 말했듯 시민들은 직장동료들이 평소에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알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시민들에게 있어 직장생활과 개인의 일상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며, SNS의 Social에서 직장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주 간혹, 1촌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 시민에게 왜 1촌 신청을 수락하지 않느냐고 천진무구하게 질문하는 정신 나간 꼰대가 있는데, 그 순간 당신은 시민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회사의 존망이 걸린 일이 아니라면 주말에 동료에게 업무 관련된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일로 연락하는 것은 더더욱 말도 안 됩니다.
간혹, '시간 지나면 잊어버릴까 봐 미리 이야기를 한다. 답장은 출근해서 달라.'는 식의 교묘한 수를 쓰는 꼰대들이 있는데, 이건 당신의 이기심입니다. 잊어버릴 것 같으면 따로 기록했다가 출근해서 공유하면 될 일입니다. 내가 편하자고 타인의 평온한 주말에 노이즈를 만드는 행위는 시민사회에서 쉽게 용납될 수 없습니다.
자, 이렇게 시민사회에서 지켜야 할 "꼰대 수칙" 10가지라는 주제로, 당신은 꼰대다 아니다로 말이 많은 최근 직장인의 모습을 [마피아 게임]에 빗대어 풍자해 보았는데요,
꼰대든 시민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경력이 길든 짧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지속적인 이해와 공감의 노력, 존중과 배려의 실천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즐거운 직장생활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