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라는 기만

by 필문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발전하고 나아가며 새로운 것들을 생산해내는가

최선과 열심을 다했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이 질문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목을 조른다.


결과를 두고 이야기한다. 부를 이루고 사회적 명성을 얻으면 성공한 삶이며, 그렇기에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 받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의 삶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며 시간을 낭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든다.


나는 목표를 꽤 높이 두고 생각하며 행동함으로 살아내려고 한다. 이러한 시선으로 인해 나를 향한 스스로의 평가는 꽤나 가혹하다. 실제로 행한 것은 나태함과 게으름이지만, 높은 기준 때문에 스스로 자책감을 느끼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게 맞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큰 오해가 생겨버린다. 때로운 우월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자만심을 갖기도 한다. 각자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다르고, 또한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완전히 다른 경우도 있는데, 과거의 나는 그들을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만이 정답이며, 저들은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있다고 판단한 적도 있었다. 나는 정말 위선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최선'과 '열심'은 과연 무엇일까? 타인의 기준을 배제하고서라도, 각자가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동의할 것이다. 과연, 스스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은 어떻게 평가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답은 '각자 스스로 밖에 모른다'이다. 어떤한 일을, 어떠한 취미를 가지든지 괜찮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행하는 와중에 각자 스스로 죄책감이 드는지 살펴보자. 퇴근 후 누워서 유튜브를 보면서 죄책감이 든다면? 운동을 게을리하면서 살이 찔 걱정을 하고 있다면?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타인이 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나의 삶은 내가 스스로 살아내는 것이다. 나 스스로의 하루에 스스로가 보기에 최선을 다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물론 그 평가의 기준는 엄격해야할 것이다)


살아가는 지금 순간에 내가 원하는, 즐거움을 주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일에 최고의 노력을 다하면 된다. 내가 행하는 것들이 남들이 보기에는 낭비일 수 있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수학공식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다. 행하는 모든 것들은 기회가 되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부디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나'라고 물어보자. 그에 대한 답은 스스로가 만들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관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