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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Nov 15. 2021

협재, 그 바다

제주도 이야기 #2

일 년 중 직장인으로서 내가 만들 수 있는 최선의 휴식은 추석 명절을 이용하는 것이다. 2019년 추석 당시에도 나는 연차를 사용하여 9일의 휴식을 보냈고 당시에는 혼자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조금은 멀리 여행을 다녀옴으로써 일종의 성취감을 느꼈달까.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긴 추석 연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백신의 여파로 며칠을 잉여스럽게 보내고 그 덕에 나는 자연스럽게 침대 및 소파와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어딘가로 멀리 떠나야 한다는, 시간을 아끼고 하나라도 더 쟁취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렇지 않은 나의 몸이 따로 놀고 있었고, 이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로 이어져갔다.
 

결국 배낭을 메고 그냥 집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는 제주도. 올해 이미 한번 다녀온 제주도였고, 조금은 여유를 두고 다시 오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멀리 떠나고 싶었기에 이륙 두 시간 전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매했다. 카메라와 박 배낭을 메고 아무 생각 없이 공항으로 향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제주도에 도착했다.

 


렌트카 인수하러 가는 길

다행인 점은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어떤 계획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박지를 구축하고 노을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렌터카를 예약했다.

 


10년만에 만나는 친구

제주도를 오기로 마음먹고 난 후, 고등학교 동창 친구 한 명도 제주도에 있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내 기억 속 이 친구는 참 착하고 멋진 친구였고, 10년이라는 시간에 어색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귀포의 낙조

서귀포에 도착했다. 박지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어차피 이번 여행은 발 닿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바로 최남단 서귀포로 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어색하지 않았다. 나이가 만들어낸 능숙함인가 혹은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 때문인가, 그 어떠한 이유든 우리는 유쾌하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게 되었다.

 


협재해수욕장

밤 10시가 넘어서야 박지를 구축하러 간다. 목적지는 협재해수욕장. 협재해수욕장은 와 본 기억이 없었고, 또한 이곳에 박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었다. 어두운 밤 도착하니 해변 한편에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다른 백패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텐트를 칠 수 있었다.

 


협재의 밤

협재의 밤은 아름다웠다. 자연히 보이는 별들과 바다에 떠있는 또 다른 별들. 피곤이 느껴지지 않는 풍경에 한참을 앉아만 있었다. 집에서 나와 이곳에 오기까지 불과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여행이란 혹은 삶이란 쉽고도 간단할 수 있거늘 나는 항상 계획에 늪에 빠져 실행의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제주도에 온 것은 별 일이 아니지만, 생각을 버리고 실행에 옮겼다는 오늘의 행동은 마음속 한 구석에 남을 것이다.

 


캠퍼의 길

이 밤이 좋다. 나만의 한 평짜리 공간에서, 넉넉지 않은 음식에도 배부를 수 있으며,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이 캠핑, 특히 백패킹의 밤이 좋다.

 

 


협재의 아침

아침이 밝았다. 9월 중순이 넘어가는 계절에도 제주도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불가마 같은 텐트 밖으로 나와서 해변을 거닐어 본다.

 


아직 돌아갈 비행기를 예매하지 않았다. 1박을 하고 돌아갈 생각이 있었지만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렌트도 했으니 좀 더 자유롭게 발 닿는 곳으로 제주도 구석구석을 여행해보자.

 

끝.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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