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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Nov 11. 2021

우렁차고도 고요한 선자령의 밤

백패킹 이야기 #3

지난 7월 선자령으로 백패킹을 다녀왔다.
 

백패킹을 가기 전, 검색해보니. 내가 백패킹에 입문하기 전부터 몇몇 문제들이 있었다고한다. (쓰레기 무단투기 및 사유지 문제 등...). 누가 어떠한 잘못을 했음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정의롭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절대 아니다. 법이라는 테두리가 있으니 이에 입각하여 각자가 성숙하고 아름다운 백패킹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강천섬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검색해보니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에는 법적인 야영금지 제재가 없다고 한다.(실제로 가보니 사유지, 즉 목장에는 야영 및 취사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는 팻말이 곳곳이 설치되어있고, 국유지에는 국유지를 표시하는 노란 표지판만 있을 뿐이다.) 국유지에 피칭을 하기로 하고 산행길에 오른다.
 


운해가 가득하다

다행히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국유지 팻말이 보여서 텐트를 바로 피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고 텐트를 피칭하기까지 운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활한 선자령을 기대하고 왔지만 흐린 날씨가 약간 야속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이었다. 안개 속에서 풍력발전기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매우 가까이 있었다. 습기 때문에 카메라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터라 부랴부랴 삼각대를 들고 초원으로 달려갔다.
 

 

매우 흐린 날씨

흔히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 초원 아래로 쭉 이어진다. 하지만 흐린 날씨때문인지 백패커들이 많지는 않았다. 습기 머금은 카메라 때문에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없었지만, 이 곳에 서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떨리고 감격스러웠다. 덥고 습한 상태로 인한 꿉꿉함을 잠시 잊어버렸다. 백패킹을 즐기다보니 사소한 불편함들은 쉽게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거대한 발전기

작동하는 소리가 매우 크다. 흡사 거대한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같다. 생각보다 웅장해서 가까이 가면 가늠이 안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발전기 날개 사이로 보이는 달을 찍고 싶어졌다. 일상의 것과 일상의 것들이 만났을 뿐인데 무엇인가 더 특별해 보이는 까닭은 여행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야속한 날씨

'사진이 왜 이렇게 흐리게 나올까?'에 대한 답을 나의 촬영 실력을 탓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촬영 후 돌아오는 길에 렌즈 필터에 낀 자욱한 습기를 발견하고 나서는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였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남들처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약간 아쉬웠지만, 촬영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무엇을 찍은 것일까?

다행인 점은 나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노이즈가 가득한 사진을 찍을 정도의 실력에서 어느정도 노출값과 셔텨스피드를 조절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사색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솔캠은 충분히 의미있는 여행이 되지만,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발전해나가는 것 또한 나에게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그것이 촬영실력이 되었든, 생각의 발전이 되었든.
 


결과물

혼자 백패킹을 가면 심심하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심심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할일이 많다.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다보니 결국 위와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카메라를 새로 구매한 것이 후회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무엇인가를 구매하거나 어떠한 행동을 실행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가끔은 답답한 경향이 있지만, 그만큼 결과적으로 후회되는 선택을 할 확률이 줄어든다. 나의 이러한 성향이 좋지만, 가끔은 거침없이 실행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역시 사람은 서로 엮이고 도와가며 살아야함을 잠시 느낀다.
 


텐풍

새벽 1시쯤 느즈막히 잠이 들었다. 사진찍느라, 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처음올라왔을 때만 해도 이런 풍경이 펼쳐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실 출발하기 전까지, '비가오면 어떡하지', '별들이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고민들이 나의 발목을 잠시 붙잡았다. 하지만 그 동안의 나의 여행들, 그리고 이번 선자령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Just go!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하늘을 가득 매운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광활한 우주에 한복판에서 나는 어디쯤에 와있으며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을 던져본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스스로가 이제는 귀엽게 느껴진다. 신념, 철학과 같은 것들이 3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를 성장시켜온 것은 맞지만, 오히려 생각에 사로잡힌채 실행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의 모든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없지만, 지금 현재 살아가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생각을 줄이고 실행하는 자세, 즉 추진력이 필요하다.
 

여행을 마무리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지고 '건강'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백패킹이라는 취미는 나에게 꽤나 잘 맞는 것 같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누리러 금방 또 와야지.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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