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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20. 2020

트랜스아이덴티티 캐릭터Ⅱ

영화 <마더>_불경스러운 광기의 모성 

<마더>의 엄마(혜자): 광기의 모성으로 재맥락화 되다    


엄마 혜자의 정체성은 이름 그대로 엄마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마더>의 혜자도 자신을 희생하며, 아들 ‘도준’(원빈 분)을 보호하려고 한다. 자신은 작두에 손이 잘려나갈지언정, 찻길에서 위험하게 놀고 있는 아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 식사자리에서 고기 살을 발라 아들의 밥 위에 얹어주고, 담벼락에 오줌을 누는 아들에게 한약을 먹인다. 혜자는 집착적으로 보일만큼 온 신경이 아들에 쏠려있다. 아들의 지능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들을 향한 혜자의 행동은 어딘가 지나쳐 보인다. 그러나 ‘엄마니까’라는 말로 수긍이 되기도 한다. 비이상적 행동도 이해의 대상이 될 만큼, 모성은 이미 사회적으로 신성의 영역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혜자는 보편적 모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아들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이 되면서, 혜자의 욕망은 꿈틀댄다. 혜자는 물방개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아들이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사회 공권력은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거짓자백을 받아내고, 변호사는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기는커녕 형량을 갖고 회유하려 든다.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썼는데,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혜자는 직접 아들을 구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이는 혜자를 보편적 모성의 범위에서 탈선하게 만든다.  


혜자의 모자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위치한다. 편부모 가정에다가 아들은 장애까지 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형사 ‘제문’(윤제문 분)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아들 친구 ‘진태’(진구 분)는 근본부터 틀려먹은 종자라 어딘가 의심스럽다. 아들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사회 공동체의 부조리에 혜자가 직접 발 벗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혜자는 보편적 모성 정체성을 전환하기에 이른다.     


혜자는 현장검증 자리에서 아들의 구명운동을 벌이고, 직접 증거를 찾아 헤매며 탐문까지 한다. 명복을 빌러 간 피해자의 상갓집에서는 아들을 욕하는 군중에게 항변하기도 한다.


사실은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



이 순간에 혜자의 얼굴에서는 짐승 같은 살기가 스친다. 혜자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과정은 혜자의 모성을 점차 남성적 형태로 변화하게 한다. 모성의 성질이 여성성에서 능동적이고 폭력적인 남성성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종국에는 자신의 아들이 진범임을 알게 되자 목격자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혜자의 보편적 모성 정체성은 광기의 모성으로 완전하게 전환된다.


혜자의 모성 정체성은 단지 아들을 보호하고 싶은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그릇된 믿음이 이기적 모성을 낳았고, 결국 살인이라는 광기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보편적 모성이 극단적 상황 속에서 사회적으로 재맥락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포용과 희생의 모성이 광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혜자의 정체성 전환은 상갓집에서 악다구니를 치고 나와 괴기스럽게 바르는 빨간 루주로, 불량학생을 취조하며 피우는 담배 등으로 표상된다. 무엇보다 혜자의 정체성 전환을 잘 나타내는 표상 장치는 ‘춤’이다.


영화의 프롤로그 씬에서 혜자는 정신이 나간 듯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요상한 춤을 춘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상당한 궁금증을 안겨주는데, 영화 말미 혜자가 살인을 하고 난 뒤에 상황임이 밝혀지면서 그 궁금증이 풀린다. 광기의 모성(살인자)으로 정체성이 전환된 뒤에 혜자는 넋을 놓고 춤을 추게 된 것이다. 혜자의 춤은 영화의 에필로그 씬에서도 이어진다. 영화 말미, 혜자는 자신의 살인 행위를 아들이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충격을 받은 혜자는 체념한 듯 관광버스를 타고, 이웃 아주머니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관광버스 안에서 신명나게 춤을 추는 아줌마들 틈바구니에서, 혜자는 자리에 앉아 치마를 걷어 올리고 허벅지에 침을 놓는다. 나쁜 일, 끔찍한 일, 속병 나기 좋게 가슴에 꾹 맺힌 거, 깨끗하게 풀어주는 침 자리다. 아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놓으려던 침이었는데, 결국 스스로에게 침을 놓게 되었다. 자신의 살인을, 광기의 모성을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이제 혜자는 모든 기억을 잃은 망각의 존재가 된다. 그리고 춤을 춘다. 또다시 정체성이 전환되었음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혜자는 춤을 추며 관광버스 속 춤을 추는 군중 속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혜자는 군중과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마지막 장면은 이 사회의 모든 엄마들도 혜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정체성을 전환할 수 있다.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혜자와 같이 광기의 모성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엄마고, 모성이고, ‘엄마니까’로 이해되는 모성본능이다. 혜자의 살인은 모성인가? 광기인가? 영화는 혜자의 정체성 전환을 통하여 모성에 대한 사회적 재의미화를 요구한다.



<마더>의 김혜자: 국민엄마의 불경스러운 욕망


영화 <마더>는 김혜자를 사지에 내모는 영화다. 감독은 김혜자를 찍는 영화라고 공공연하게 밝힌다.


김혜자 선생님의 어두운 면이나 광기 어린 면을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이 ‘엄마와 살인사건’이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


감독의 의도처럼 영화는 계속해서 엄마 혜자에게 이질적 요소를 대입한다. 엄마와 살인, 엄마와 섹스, 엄마와 폭력, 엄마와 근친상간. 모성은 자기희생적이고 자애롭다는 거룩한 모성신화에 계속해서 이질감을 투척하여 모성성을 전복시킨다.

돌이켜보면 혜자는 폭력과 살인에 연관이 깊다. 과거에 생활고를 비관하며 농약이 든 박카스로 아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었고, 도준이 진범임을 알고 있는 목격자는 살해해버린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방화까지 서슴지 않는다. 살해 사건을 탐문하는 과정에서도 진태를 사주하여, 혐의자에게 폭력을 가하며 취조를 한다. 기도원을 탈출한 종팔이가 아들을 대신하여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고서도 침묵한다. 이렇듯 혜자는 사회 제도권의 사각지대에서 끊임없이 폭력과 살인, 범죄를 저지른다. 공권력의 부당함으로부터 아들을 구하겠다고 나선 엄마가, 이제는 본인이 모성 권력이 되어 부당함을 저지른다. 모성의 신성은 추락한다. 


엄마에게 있어서 성(性)은 또 얼마나 이질적인 영역인가. 엄마도 섹스를 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애써 외면한다. 엄마에게 섹스를 대입해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나 영화 안에서는 혜자를 향한 성적인 뉘앙스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혜자가 진태의 성행위를 목격하는 장면이나, 혜자와 진태가 성관계를 맺은 사이임을 암시하는 대목이 그러하다. 또한 영화는 혜자와 도준이 근친상간의 관계로 읽힐 수 있는 장치들도 숨겨놓는다.     


혜자와 도준이 식사하는 장면에서, 여자랑 잘 거라는 도준의 말에 혜자는 은근히 질투를 내비친다. 도준이 담벼락에 노상방뇨를 하는 장면에서는 도준의 성기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혜자가 도준이 탄 버스를 바라보며 말할 때는 그녀의 얼굴에 외로움이 깃든다.


 빨리 와! 늦지 마...



단순히 혼자 남은 엄마의 쓸쓸함이라기보다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애처로움에 가깝다. 또한 혜자와 도준이 함께 잔다는 사실을 마치 성관계로 인식하게 만드는 의도적인 대사도 등장한다. 도준을 취조하던 형사는 뜬금없이 엄마와 동침하는 지를 물어본다. 혜자가 취조한 학생은 ‘떡을 친다’는 노골적인 표현을 써가며 근친상간의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영화 <마더>는 관습적인 서사구조 안에서 엄마 캐릭터의 일반적인 관습을 변형시켜 모성의 개념을 비틀어 버린다. 즉 헌신, 사랑, 희생 등을 표상하는 모성에다가 성욕, 폭력, 살인, 광기 등 이질적인 요소를 붙여, 전통적인 모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모성상을 보여준다. 김경욱은 “엄마의 성적 욕망과 근친상간의 문제는 김혜자의 스타 이미지와 모성애의 환상이 더해지면서 효과가 커진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모성상의 전복에 배우 김혜자의 이미지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배우 김혜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엄마라고 해도 무방하다. 김혜자는 국내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속에서 오랜 기간 어머니 역할을 연기하며 국민엄마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주부들의 주방 필수품인 유명 조미료를 27년간이나 TV광고의 모델로서 홍보했다. 김혜자의 입을 빌려 유명해진 광고 슬로건 “그래, 이 맛이야”는 제품 홍보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김혜자를 요리 잘하는 엄마 이미지로 정형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이 드라마에서 비롯되어 든 광고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TV매체를 통해 수십 년 동안 엄마 역할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사실이다. 대중은 김혜자 그 자체를 <마더>의 엄마로 인식한다. 캐릭터의 이름마저 없다. 김혜자가 곧 마더인 샘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모성상의 표상인 김혜자이었기에 이질적 요소의 간극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김혜자와 살인, 김혜자와 섹스, 뭔가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죄를 짓는 기분이다.  역할을 도회적 이미지의 배우 윤여정이 했다면, 영화의 이질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처럼 영화 속 엄마 혜자의 정체성 전환에는 김혜자였기에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김혜자의 얼굴이었기에 광기의 모성이 ‘엄마니까’라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었다. 오로지 김혜자의 공이다.  


여성 캐릭터, 트랜스 아이덴티티를 욕망하다


한국 영화의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 금자와 마더(혜자)를 살펴보았다. 공통적으로 두 캐릭터는 모두 극단의 정체성 전환을 경험하는 트랜스 아이덴티티 캐릭터였다. 금자는 복수를 욕망하며 친절한 금자씨에서 마녀 이금자가 되었다. 혜자는 아들을 감옥에서 구출하고자 헌신의 엄마에서 광기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두 캐릭터 모두 정체성 전환의 계기가 되었던 자신들의 욕망을 성취하였다. 금자는 복수에 성공했고, 혜자는 아들 도준을 구하였다. 극단적인 정체성 전환을 경험한 두 여인의 결말은 어떨까?


금자는 그토록 소원했던 원모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 복수에 성공하면 속죄하고 영혼의 구원을 받을 줄 알았는데, 무심한 하늘은 하얀 눈만 내려줄 뿐이다. 금자는 그토록 원하는 구원을 갈망하며, 하얀 두부 모양 케이크에 얼굴을 처박는다. 두부처럼 하얗게, 아기 속살처럼 죄 없는 존재가 되고자, 복수로 남은 괴물 같은 얼굴을 케이크에 처박는다. 혜자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스로에게 구원을 준다. 모든 기억을 잊게 하는 혈 자리에 침을 놓는다. 이제 혜자는 끔찍하게 변한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게 될 것이다. 광기보다 망각이 더 나을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 캐릭터는 모두 트랜스 아이덴티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결말은 비극이다. 욕망 실현에 대가로 금자는 구원받지 못했고, 혜자는 정신 나간 여자가 됐다. 공교롭게도 두 캐릭터가 품은 욕망의 근원은 자식이었다. 스스로의 욕구보다는 자식의 안위 때문에 정체성 전환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모성은 정말 신성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여성이 주인공인 서사체에서 모성이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에 앞서 분명한 것은 트랜스 아이덴티티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마더>는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하면서도, 극단적 트랜스 아이덴티티 캐릭터를 그려낸다. 더불어 배우 이영애와 김혜자의 이미지 원형을 차용하고 변형하여, 트랜스 아이덴티티 캐릭터를 극대화시켜 표현한다. 자크 오몽은 “스타의 이미지는 항상 인물의 성격화를 풍부하게 만들고, 그와 반대로 인물은 스타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영화 속 캐릭터는 배우의 몸을 빌어서 나타난다. 배우의 얼굴, 이미지, 신체적 특징은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극 중 인물과 배우가 한 몸이 되었을 때, 생동감 있는 새로운 캐릭터가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이 배우의 이미지가 잘 부합되는 캐릭터만으로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관객은 늘 새로움, 반전, 이중성, 전복 등을 원한다. 한마디로 관객은 트랜스 아이덴티티를 원한다. 금자가 친절한 금자씨로 상냥하게 살아간다면, 혜자가 헌신의 엄마로 고통을 감내한다면, 관객은 바로 극장을 떠날 것이다. 또한 이영애가 자신이 가진 여성스러운 이미지의 역할에만 머물고, 김혜자가 드라마에서 보여줬던 뻔한 엄마 역할에만 머문다면 대중은 외면할 것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와 이영애, 영화 <마더>의 엄마와 김혜자는 각자에게 부여된 정체성을 전환시켰기 때문에 관객의 뇌리에 남을 수 있었다.


영화 캐릭터, 트랜스 아이덴티티를 욕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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