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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18. 2020

송강호 장르의 체계Ⅱ

송강호 장르론_네 번째

장르의 두 가지 속성


토마스 샤츠(Thomas Schatz)는 영화의 산업적 특성을 강조하며, 장르는 상업영화 제작 그 자체의 물질적 조건의 결과라고 말한다. 산업적 체계 내에서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수용하고, 만족시키는 영화를 생산해야 한다. 여기서 관객의 기대는 상호모순적인 형태로 양분되는데, 기존 영화의 선험적 양식을 원하면서도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샤츠의 표현대로라면 친숙한 내러티브 관습의 컨텍스트 안에서 창조성과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관객은 처음 접하는 영화적 양식은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 친숙한 양식을 원하지만, 같은 장르의 영화를 그대로 답습하면 진부하기에 새로움을 추구한다. 관객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며 발달한 장르는 두 가지의 상반된 성질을 갖는다. 영화적 양식을 반복하려는 ‘관습’적 성질과 반복 속에서도 새로움을 창조하는 ‘변형’적 성질이다. 관습적 속성은 장르 고유의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며 나타나는 성질로, 장르 고유 양식을 통해 동일 장르 내의 영화들을 규합하고 여타의 장르영화들과 구분 짓는다. 결과적으로 장르의 고유 양식은 관습적 속성에 의하여 유지‧존속되는 것이다.


장르는 관습을 토대로 존속되더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부의 특성에 변화가 일어난다. 완전하게 똑같은 패턴을 답습하는 영화를 보려는 관객이 없듯, 장르의 고유한 특성은 다양한 변주를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장르의 변형적 속성이다. 앙리 포시옹(Henri Focillon)은 예술의 양식이 내적 법칙에 의해 변화함을 강조하며, 예술 형식에 변화를 네 가지 단계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의 형식은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실험단계, 특정한 양식을 완성하는 고전 단계, 우아함을 더하는 세련화 단계, 과장된 표현이 나타나는 바로크 단계로 나뉜다.  


샤츠는 포시옹의 예술 양식의 단계를 장르의 진화과정으로 재해석하는데, 장르는 실험적 단계에서 특정 장르의 형식을 형성하고, 고전 단계에 진입하여 특정 형식을 관객에게 인식시키고, 세련화 단계에서 형식이 패러디되고 전복되며, 바로크 단계에 이르러 해체된다고 말한다. 장르가 형성되고 관객에게 인식되어 하나의 관습적 틀을 만들고 나면, 그 이후로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기 시작한다. 장르는 완전한 양식 체계가 자리 잡히면 구성 요소들의 변화, 패러디 등을 통해 장르의 주제와 형식은 더 풍성해지고, 장르 자체의 정체성은 확고해진다.   


또한 장르는 내부의 변화 이외에도 외부 세계, 즉 시대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화에 의해서도 진화한다. 배리 랭포드(Barry Langford)는 샤츠의 장르 진화과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장르 수정주의 개념을 통해 보완한다. "수정주의는 전통적인 장르 태도가 변화된 사회 환경에 적용될 수 없는 시점에 나타나며, 이 단계에서는 장르 본래의 세계관, 이데올로기는 일부 제거된다.” 여성운동, 흑인운동, 제3세계 운동 등 포스트모더니티 시대의 사회‧정치적 현상은 급격한 장르의 수정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현대 영화에서는 웨스턴 장르에서도 백인 남성 이외에 여성이나 흑인, 라틴계 아시아인까지 모두가 주체적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이처럼 장르는 관습적 성질과 변형적 성질을 아우르며 특정한 내적 체계를 고수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형태들을 야기하며 체계를 확장한다. 나아가 두 속성의 지속적인 경쟁과 융합은 장르를 또 다른 차원으로, 즉 재창조의 형태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장르가 진화함에 따라 모호성, 주제의 복합성, 형식의 자의성 등 내러티브의 예술적 기교들이 장르의 정형 내에 진입한다. 진화과정을 통해 재창조된 후기의 장르에는 내러티브 양식에 예술성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초기 장르는 고유의 양식을 전달하기에 효과적인 내러티브의 직접성이나 단순성을 필요로 하지만, 체계가 잡히고 진화한 장르에서는 예술성과 관련한 미학적 요소들이 개입하게 된다. 장르 고유의 양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대립적 관계에 놓여있던 예술성이나 작가주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상태에 이른다. 실례로 현대의 감독들은 장르를 이해한 뒤에, 자신의 예술성을 발휘하며 예술가 혹은 작가로 인정받는다. 이제 장르는 하나의 예술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르의 두 가지 속성을 토대로 송강호 장르도 구분 지을 수 있다. 송강호 장르의 고유 양식을 나타내는 영화들은 관습적 속성에 해당하는 부류로, 송강호 장르의 양식을 거스르는 영화들은 변형적 속성의 영화로 상정할 수 있다. 송강호 장르의 관습적 속성은 앞선 글에서 설명한 고유 양식의 특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반대로 변형적 속성의 특성은 고유 양식에 완전하게 반하는 관점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송강호 장르의 관습적 속성은 송강호가 평범한 사람으로 등장하고, 외부의 사건에 휘말리며 말리며 어쩔 수 없이 욕망하게 되는 이야기를 갖는다. 변형적 속성은 송강호가 사회 기득권층에 속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자신의 욕망 때문에 사건이 발생되는 서사구조를 보인다. 외부의 문제로 말미암아 욕망을 품게 되는 관습형 영화와는 다른 차원의 욕망이다. 또한 관습적 속성은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면서 관객에게 강력한 페이소스를 전달한다. 그에 반해 변형적 속성은 대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주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페이소스는 주지 못한다.

 


도상적 측면에서 관습적 속성은 송강호 특유의 유머와 웃음이 깃들고, 욕망을 표출하는 '욕망의 얼굴'의 클로즈업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변형적 속성은 송강호식 유머 코드는 결여되어 있고,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는 주로 수용적인 얼굴인 ‘경이의 얼굴’을 나타낸다. 관습과 변형의 속성을 정반으로 나누어 기준을 설정한 것은 두 가지 성질의 확실한 대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물론 송강호의 모든 영화가 두 가지 속성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부합하여 경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별 영화의 특징이 상대적으로 더 중시되는 쪽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송강호 장르의 고유 양식을 기준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고유 장르를 답습하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장르 변화를 추구하는 영화인지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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