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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Sep 08. 2020

송강호 장르의 세 가지 양상

송강호 장르론 다섯 번째_ 관습, 변형, 예술  

송강호 장르의 두 가지 속성에 근거하여 송강호의 영화들을 위치 지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송강호 장르의 특징을 이해하고, 그 변천과정을 살펴보면서 결론적으로 송강호 장르의 발전 요인을 규명할 수 것이다. 먼저 송강호 장르 양식인 평범한 소시민의 캐릭터가 비범한 사건에 휘말려 이를 해결해나가는 서사구조와 송강호 특유의 유머 코드 및 욕망의 얼굴을 나타내는 클로즈업 이미지를 활용하는 영화들을 관습적 속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대로 송강호 장르 양식을 절대적으로 거스르는 영화들은 변형적 속성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기득권층의 캐릭터가 자신의 내재한 욕망을 실현하는 서사구조와 경이의 얼굴을 보여주는 클로즈업 이미지를 활용하는 영화들이 해당된다. 관습형 영화의 변화나 진화의 차원을 넘어서 완전하게 다른 형태로 새롭게 시도되는 영화들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기존 장르의 두 가지 속성에 한 가지 성질을 더하였는데, 바로 예술적 속성이라는 개념이다.


앞서 장르가 진화 과정을 거쳐 최종단계에 이르면, 내러티브에 예술적 기교들이 개입되어 장르를 넘어서 예술의 형식이 나타난다고 주지한 바 있다. 장르 양식이 고착화되고 나면 장르는 특정한 범위를 넘어서 자유롭게 변이 되고, 혼합되고, 해체되고, 재창조된다. 예술적 속성은 단순히 관습과 변형적 성질의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을 넘어서는 심오한 예술성의 발현이다. 장르의 탈장르화다.


송강호 장르 역시 두 가지 속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영화들이 존재한다. 송강호 장르의 관습과 변형의 특징들이 교차하기도 하고, 예술적 기교들이 개입하면서 장르 양식을 넘어 하나의 예술성이 부여된다. 관습형의 내러티브에 변형형의 도상적 요소가 나타나기도 하고, 내러티브적으로 복잡한 상황이나 부족한 지점들을 송강호의 깊어진 연기예술이 커버하기도 한다. 송강호 장르 양식이 입체화되거나 연기예술로 인해 진화하여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형식을 띠는 영화들을 예술적 속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관습적 속성: <반칙왕>(김지운 감독, 2000),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2000), <YMCA 야구단>(김현석 감독, 2002),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 2003),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 2004), <괴물>(봉준호 감독, 2006), <우아한 세계>(한재림 감독, 2007), <밀양>(이창동 감독, 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감독, 2008), <의형제>(장훈 감독, 2010), <관상>(한재림 감독, 2013)

     

변형적 속성: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감독, 2002), <남극일기>(임필성 감독, 2005), <박쥐>(박찬욱 감독, 2009), <푸른소금>(이현승 감독, 2011), <하울링>(유하 감독, 2012), <설국열차>(봉준호 감독, 2013)

     

예술적 속성:<변호인>(양우석 감독, 2013), <사도>(이준익 감독, 2014), <밀정>(김지운 감독, 2016), <택시운전사>(장훈 감독, 2017)


위의 정리에서처럼 관습형의 영화들은 관객이 송강호 장르에 기대하는 서민의 서사와 송강호의 도상적 기호들이 녹아있는 작품들이다. 송강호의 필모그래피 중 대다수의 영화들이 관습적 속성에 속한다. 관객이 송강호 장르를 사랑하는 토대가 되는 양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흥행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YMCA 야구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다.


반면에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은 관객이 배우 송강호에게 기대하는 지점들과는 상이한 차갑고 이성적인 이미지들을 활용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마치 토마스 셔츠가 장르의 고전적 관습이 전복된다고 말한 것처럼, 변형형의 영화들은 기존 송강호 장르의 관습들을 전복시킨다. 또한 관습형 영화에 비하면 수적으로 적기도 하거니와, <설국열차>를 제외하면 모두 흥행에 참패하였다. 철저하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것인데, 송강호 장르의 관습적 양식을 거슬러 관객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예술적 속성의 영화들은 비교적 최신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4년을 기준으로 송강호 장르가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진화했다고 평가될 정도로 예술형의 영화들은 전작들과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관습과 변형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기에 모호할 만큼 두 특징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무엇보다 두 속성에 통달한 송강호의 연기가 입체화된 장르 양식을 매끄럽게 표현하여, 특징의 교차로 발생되는 이질감을 상쇄한다. 지금부터는 각 속성의 대표적인 영화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송강호 장르 양식의 실체를 면밀하게 파악해보겠다.  


관습적 속성의 송강호 영화: <반칙왕>, <우아한 세계>


<반칙왕>은 송강호 장르의 토대가 되는 영화로서, 송강호 장르 양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샤츠의 설명처럼 장르가 처음 형성되는 실험단계에서는 가능한 형식의 간섭은 최소화된다. 장르가 내포하고 있는 특정한 자아상을 전달하기 위해선 장르만의 고유 양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형식의 다양성이나 실험적 요소들은 외려 장르의 양식을 모호하게 하여 관객의 장르 인식에 혼란을 줄 수 있다.


<반칙왕>은 송강호 장르의 양식 체계를 충실히 이행한다. 특히 내러티브 체계는 송강호 장르 양식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회 속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대호’(송강호 분)는 소시민 그 자체이다. ‘부지점장’(송영창 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자 레슬링 세계에 입문하면서 새로운 삶과 주체성을 욕망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세계 속의 대호나 레슬링 세계의 또 다른 정체성인 반칙왕 모두 욕망은 좌절된다. 무대 위 반칙왕은 최고의 ‘레슬링 스타’와 혈전을 벌이지만 무참하게 얻어맞고, 현실의 대호는 부지점장에게 통쾌한 복수를 결심하지만 어이없게 눈길에 미끄러져 실패한다.


또한 <반칙왕>은 내러티브 체계 곳곳에 도상 요소들을 녹여낸다. 대호가 레슬링을 배우는 과정과 레슬링 경기 장면에서 송강호 특유의 표정, 언술, 슬랩스틱 등 웃음 요소들이 총동원된다. 대표적으로 대호와 레슬링 선배가 기술을 연마하는 장면을 거론할 수 있다. 대호는 코브라 트위스트 기술을 걸려고 안간힘을 쓰는 레슬링 선배를 의도치 않게 역 기술을 걸어 제압한다. “뭘 못 일어나, 왜? 아퍼? 내가 기술 건 거야?” 이 장면에서 대호의 대사는 송강호 특유의 말투와 심드렁한 표정연기가 어우러져 희극성이 극대화된다.

이외에도 레슬링을 하면서 상대에게 고무줄을 튕겨 맞추다가 잘 못 튕겨 자기 얼굴에 맞거나, 부지점장에게 복수하는 결전의 상황에서 눈길에 넘어지는 등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중요한 순간에 웃음을 자아내는 웃픈 코미디까지 다양한 코믹 요소를 내포한다. 더불어 영화 말미 레슬링 스타와의 혈전에서 마스크가 찢어져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순간에, 영화는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클로즈업 이미지는 욕망의 얼굴로 주체성을 향한 대호의 폭발하는 욕망을 제대로 보여준다.  


<우아한 세계>는 송강호 장르 양식의 확장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사실 송강호 장르 양식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정점을 찍으며 관객들에게 확실히 각인된다. 그 이후 송강호 장르 양식을 따르는 영화들은 조금씩의 변화를 추구하는데, <우아한 세계>는 깊어진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서 더 현실적이고, 깊은 통찰이 있는 인물을 구축하고 구현한다. 장르 변주의 시작점은 장르 양식이 재 탐구되고 형식과 주제가 복잡해져 가는 것이다. <우아한 세계>는 장르 양식을 확장하면서도 재의미화한다.


<우아한 세계>의 내러티브도 송강호 장르의 양식 체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생계형 조폭 ‘인구’(송강호 분)는 직업이 조금 남다를 뿐, 대한민국의 여느 샐러리맨 가장과 다를 게 없다. 인구는 전원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우아하게 살고 싶은 소망을 간직한 채 열심히 조직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구의 직업이 못마땅한 가족과 갈등은 깊어지고, 조직생활도 2인자와의 갈등으로 여의찮다. 인구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며 살아남고자 할수록, 조직을 배신해야 하는 사건에 휘말려 들어간다. 결과적으로 사건이 해결되고, 가족도 함께하게 되었지만 인구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인구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어 그토록 원하던 전원주택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다. 가족들을 위해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들을 위해 조직 생활을 이어간다. 멀리서 보면 해피앤딩인데, 가까이서 보면 새드 앤딩이다. 내러티브의 결말이 모호해지고 복잡화된 것은 초기 송강호 장르의 양식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다. 도상적 측면에서도 양식을 답습하면서도 깊어진다.


영화 초반부, 조직생활의 흔한 몸싸움 현장을 관조하던 인구는 무심히 말한다. “아이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 인구의 반어적 대사는 상황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인구가 아내의 머리 헹굴 물을 담아오다가 넘어져 거실에 엎어버리는 장면이나 식당에서 친구 ‘현수’(오달수 분)를 놀리며 물싸움을 하는 장면 등은 모두 송강호식 유머 코드다. 이전 영화들의 유머 코드에 비하여 더 생활밀착형으로 진화해 자연스럽고 공감적인 웃음을 선사한다.

이러한 웃음은 역설적이게도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인구는 이민 간 가족들의 비디오 영상을 보면서 라면을 먹다가 서러움에 복받쳐 운다. 삶의 회환이 담긴 욕망의 얼굴을 한 인구는 성질에 못 이겨 라면 그릇을 던지는데, 하필 그릇이 깨져버려 집안이 엉망이 된다. 결국 울면서 제 손으로 깨진 그릇을 주섬주섬 치우는 인구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송강호 장르 영화 중에서 가장 페이소스가 짙은 웃음이다.


변형적 속성의 송강호 영화: <복수는 나의 것>, <박쥐>


<복수는 나의 것>은 송강호가 처음으로 시도한 변형적 속성의 영화일 것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 ‘동진’으로 분한 송강호는 내러티브 구성으로 보면 기존의 관습형 영화들과 유사한 것 같지만, 그의 차가운 얼굴과 냉소적 행동은 관객에게 상당히 낯설게 다가온다. 기존 캐릭터들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진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동진이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사회 중심에 있는 기득권층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건을 맞이하고 이를 해결해나간다는 내러티브 구성은 관습형 영화들과 비슷하지만, 기존 인물들과 다르게 동진은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딸의 복수를 위한 행동이라지만, 그의 행동은 다른 이들을 핍박하는 형태로 나아간다. 따라서 관습형 영화의 인물들이 욕망을 실현해 가는데 어리숙하고, 어려움이 많고, 감정적인 반면에, 동진은 복수라는 목적을 향해가는 행동에 거침이 없고, 이성적이며, 치밀하다. 내러티브의 결말도 상이한데, 관습형 인물들이 대개 실패로 귀결되고 현실로 돌아오는데 반해, 동진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송강호 장르의 내러티브 체계를 완전하게 전복시킨 것이다.

도상 요소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어디에도 송강호식 유머 코드는 찾아볼 수 없다. 스릴러 장르의 특성이라고 치부하기엔, 동일 장르인 <살인의 추억>에서의 현란한 유머 코드가 존재한다. 대사처리의 방식도 송강호 특유의 언술은 많이 자제되어 있다. 딸을 납치한 ‘류’(신하균 분)를 죽이는 극한의 장면에서도 동진은 냉정함을 유지한 채 말을 한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격정의 감정이 드러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는 감정보다는 이성을 선택하며,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여 이성적으로 표현한다.


이 장면의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도 내면의 욕망을 이끌어내기보다는 내면의 감정을 최대한 감춘다. 죽음을 앞둔 류를 바라보며 지각되는 동정심, 사람을 죽여야 하는 두려움 등이 얼굴에 새겨진다. 살인을 욕망하는 얼굴보다는 살인을 해야만 하는 인간의 공포감 같은 경이의 얼굴이다. 그동안 페이소스 짙게 감정을 드러내는 송강호의 얼굴을 통해 인물에게 감정 이입했던 관객들은 송강호의 무표정한 얼굴에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박쥐>는 송강호 장르의 변형적 속성이 한층 깊어진 영화라 할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에게는 딸의 죽음이라는 서사적 동기라도 있지만, <박쥐>의 신부 ‘상현’(송강호 분)은 아무런 동기 요소가 없다. 단지 뱀파이어가 되었다는 배경만으로 그는 가해자적 입장에 서며, 많은 사건들을 발생시킨다. 상현은 뱀파이어 신부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받고,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구와 ‘태주’(김옥빈 분)를 행한 사랑의 욕구를 이성으로 억누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태주의 치명적 유혹으로 상현의 금욕은 깨어지고, 살인은 피하고자 했던 상현은 태주의 남편을 죽이고, 금지되었던 일들을 자행하며 쾌락을 갈구한다.  


상현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태주가 점차 욕망의 화신으로 변해가면서 상현은 자신의 선택과 일련의 상황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상현은 자신의 선택으로 벌어진 사건들을 수습하기 위하여 태주와 함께 죽음을 택한다. 상현은 자신의 욕망으로 사건들을 발생시키고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하면서 역시 현실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상현은 이성을 유지하는 인물로 욕망을 표출하는 태주와 상반된 이미지를 갖는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태주가 절정에 다른 욕망의 얼굴을 보여준다면, 상현은 주로 경이의 얼굴을 유지한다. 영화 결말 죽음을 관조적인 태도로 맞는 상현의 얼굴은 초연함만이 있다.

그림        


예술적 속성의 송강호 영화: <변호인>, <택시운전사>, <밀정>, <사도>


<변호인>이나 <택시운전사>는 이전의 관습적 속성의 영화들과 맥락이 비슷하다. 극 중 인물이 인간적이고 소시민이면서, 외부적인 사건에 휘말린다는 점에서 관습적 속성이 드러난다. 송강호는 제 옷을 입은 양 특유의 유머 코드를 녹여내며 내러티브 체계를 장악한다. 페이소스와 욕망의 얼굴은 더욱 깊어져 관객의 감정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변호인 ‘우석’(송강호 분)이 법정에서 고문경찰을 신문하며,“국가란 국민이다”라고 분노의 사자후를 토해내는 장면은 그 어떤 영화에서 보여줬던 얼굴보다 강력한 페이소스와 내면의 감정을 나타낸다. 관습적 속성 영역 내에서도 진화를 거듭하여, 그 특성이 완성형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 영화를 통해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에서 발견되었던 송강호의 차가운 이미지와 경이의 얼굴도 등장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택시운전사>는 주인공 ‘만섭’(송강호 분)의 경이의 얼굴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만섭은 1980년 광주의 실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다. 현장의 참상을 바라보는 만섭의 얼굴은 인간의 두려움, 공포, 연민과 같은 원초적 감정들이 얼굴에 드러난다. 그 경이의 얼굴은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얼굴을 표상하고, 관객을 1980년 광주 현장으로 안내한다.     

두 영화의 극 중 인물은 영화의 결말에서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 관습적 속성의 영화들에서 인물들은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사회 체제에 순응하며 현실을 살아간다. 그러나 두 인물은 다르다. <변호인>의 우석은 공권력으로부터 ‘진우’(임시완 분)를 구해내지 못하며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사회에 순응하지 않고 뜻하는 바를 위하여 끝까지 투쟁한다. 한줄기 희망을 남겨두는 결말이다.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1980년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데 성공한다. 로버트 맥기는 창문 밖 변화 과정에 이를 때 장르 역시 함께 변화하고, 사회에 대한 발언이 된다고 말한다. 두 영화의 내러티브의 변화에는 사건‧사고가 끊임없는 굴곡진 시대에서, 작금의 문제들이 해결되길 바라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밀정>과 <사도>는 이전의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과 맥을 같이한다. <밀정>의 ‘정출’(송강호 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순사로 권력층 내부에 있고, <사도>의 ‘영조’(송강호 분)는 그 자체로 권력이다. 두 인물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과 근엄한 얼굴로 대변되며,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에서 만날 수 있는 송강호의 이성적 이미지로 연결된다. 그러나 서사의 구성이 두 인물의 욕망에 의해 발생된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두 인물도 목적하는 바가 있지만 각각의 상대역인 ‘우진’(공유 분)과 ‘사도’(유아인 분)의 욕망에 말려들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에 휘말리는 형상을 보인다.

 

역시 흥미로운 지점은 두 영화에서도 관습적 속성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상들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밀정>의 경우에는 송강호 특유의 유머 코드들이 배치해 있는데, 그 웃음 요소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의열단이 폭탄을 싣고 가는 기차 안 장면이다. 정출은 의열단 내에 밀정을 색출하는 작전을 돕지 않으면, 그동안의 행적을 일본에 알리겠다는 우진의 협박에 어이없어하며 말한다.“니네 편인 척 접근하는 게 내 일이야. 내가 밀정이야 밀정! 히카시가 허락한 일이라니까?” 숨 막히는 추격 상황 속에서 송강호의 표정과 언술이 더해진 이 대사는 웃음을 만들어내며 묵직한 공기를 환기한다.

 

이처럼 송강호 특유의 유머는 주제의 심각성이나 정적인 캐릭터로 인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상쇄하는 역할을 한다. 송강호 장르의 변형적 영화가 관객에게 낯섦을 불러와 거리감을 만들었다면, 두 영화는 송강호스러움을 적절하게 혼합하여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줄인다. 또한 두 영화는 얼굴 클로즈업 이미지에서 욕망의 얼굴과 경이의 얼굴이 동시에 발현되는 기이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밀정>에서 정출이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 정출은 후일을 도모하겠다는 우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은 밀정이 아니라고 열변한다.

이 대목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거짓과 마음속 진심의 괴리를 표현하는 데에 있다. 정출은 진심의 감정을 짓눌러 거짓을 말한다. 끓어오르는 진심의 폭발은 거짓을 진실로 둔갑하는 데에 활용된다. 정출의 복잡한 감정은 경이와 욕망이 교차하는 얼굴로 대변된다. 거짓과 진심 사이의 경계에서, 원형의 얼굴은 여러 특질들이 솟구치는 입체적 얼굴이 된다.


<사도>의 영조는 아들 사도의 죽음을 확인하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허탈한 표정을 한다. 내면의 깊은 슬픔을 억제하지만, 영조의 목소리는 경이의 얼굴을 뚫고 나와 흐느낀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영조의 회한이 담긴 혼잣말은 중간에 이상한 파열음이 생기며 음성이 꺾여버린다. 뒤집어진 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음성은 단단하게 응어리진 감정이 표출된다. 그 어떤 감정의 포효보다 강력한 울림을 준다. 경이의 얼굴과 욕망의 음성의 결합은 관객에게 묘한 페이소스를 전달하고, 이는 송강호의 기술과 정서가 조화된 경지의 연기력이 창출해낸 효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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