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리 Sep 10. 2020

송강호 장르의 미학_ 장르의 예술화

송강호 장르론_에필로그

송강호 장르는 근 20년을 한국의 대중에게 사랑받아왔다. 배우 송강호가 가진 개성들, 사람 냄새나는 풍모, 일상의 코믹함, 호소력 있는 페이소스 등에 관객들은 호의를 나타내며 송강호가 출연하는 영화들을 관습화시켰다. 관객들은 송강호가 출연하는 영화들에서 송강호의 개성이 담긴 코드들을 기대하고, 이러한 코드들은 송강호 장르의 양식을 구성하는 데에 밑바탕이 된다. 송강호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화들은 송강호 장르 양식에 관습적 속성의 영화로 분류되고, 대부분의 개별 작품들은 대중성을 획득하며 흥행에도 성공한다.


그러나 송강호 장르는 관습적 속성을 거스르는 영화들도 꾸준하게 선보인다. 기존 관습형 영화들의 특징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은 송강호의 개성을 배재시킨다. 이들 영화들은 송강호에 내재한 어두운 면을 끌어내고, 냉혈한에 이성적인 이미지를 활용한다. 송강호 장르 양식의 관습적 성질에 익숙한 관객들은 송강호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영화들에 당혹감을 느낀다. 혹은 송강호 코드를 기대하는 관객들은 실망감을 표하기도 한다.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의 저조한 흥행 실적이 이를 반증한다.


여기서 장르 시스템의 중요한 성질을 파악할 수 있는데, 관객은 장르의 변형적 성질보다 관습적 성질에 긴밀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장르 연구가 토마스 셔츠는 말한다.  “장르 영화와 관객의 교섭은 장르의 예정된 내러티브 시스템에서 영화적 변주를 얼마나 잘 이끌어내는지의 문제이다.” 성공적인 영화적 변주를 추구한다면, 장르의 관습과 변형의 성질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장르의 변화는 관습의 토대에서 변형을 실험해야 한다는 정설과도 같은 장르적 공식을 재확인할 수 있다. 송강호 장르에서 변형적 속성의 영화들이 관습적 코드들을 적절하게 녹여냈다면, 대중의 낯섦이 조금은 희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송강호 장르는 기존 관습적 영화들의 특징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변형적 속성의 영화를 꾸준하게 선보인다. 흥미로운 지점은 변형적 속성의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되면, 다음에는 관습형 영화를 통해 다시 관객을 만족시킨다는 사실이다. 관습과 변형의 영화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며 송강호 장르의 존속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습과 변형의 상호작용은 송강호 장르의 혁신적 진화를 이끈다. 2014년 작 <변호인> 이후로 연이어 등장한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 등 예술형 영화들의 출연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이 글에서 예술적 속성이라 명명한 네 편의 영화는 송강호 장르의 관습과 변형을 적절하게 교차하고, 융화하고, 해체한다. 기존 송강호 장르 양식을 내적으로 더 깊어지게 하고, 다양하게 분화하여 확장한다. 송강호 장르와 어울리지 않았던 이질적인 요소들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장르 양식을 재창조한다. 더 이상 송강호 장르 양식은 특정한 고유성으로 규정되지 않는 탈정형화를 보여준다.


송강호 장르 영화에서 장르성은 사라지고 그 공간에 예술성이 자리한다. 장르의 양식 체계가 해체되며 오는 빈틈을 진화된 송강호의 예술성이 채운다. 송강호 장르의 진화과정을 통해서 함께 발달한 송강호의 예술성이다. 이제는 송강호의 어두운 면을 담은 영화들도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송강호 자체가 불선명해진 장르 양식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송강호의 연기력은 예술적 경지에 올라있어서, 어떤 형식의, 어떤 성질의 영화를 만나도 관객에게 이해시키는 힘이 있다. 예술화 단계에 오른 송강호 장르의 강력한 동력이다.  


송강호 장르가 보여주는 탈장르성, 즉 장르성을 넘어서는 예술화 현상은 오랜 시간 반복한 장르의 진화과정과 연관이 깊다. 관습과 변형의 성질을 가리지 않고 포괄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만약 송강호 장르가 대중의 기호에 맞춰 관습적 성질의 영화만을 선보였다면, 스스로의 장르적 양식을 뛰어넘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해서 변형적 속성의 영화를 선보이며 실험했기 때문에, 장르성을 초월하고 예술화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다.

여기서도 장르 시스템의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하나의 장르가 예술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관습과 변형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모두 포괄하여, 혁신적인 진화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장르 시스템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안정적 진화와 더불어 대중의 기대에 역행하는 파격적 실험을 통한 급진적 진화도 병행해야 한다. 여러 방향의 진화과정은 장르 자체의 내실을 다지고, 형식의 분화를 이끌며 양식의 체계를 확장시킨다. 장르 양식의 고유성의 범위가 확장될수록 장르의 예술화는 그 가능성이 커진다.


송강호 장르는 예술가가 장르가 되는 현상을 넘어서 장르가 예술이 되는 현상을 실현한다. 장르의 예술화는 예술 담론에 있어서 대립적 성질인 상업성과 예술성, 대중성과 독창성, 관습성과 창조성이 공존할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양립하던 두 가치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파생한다. 장르의 예술화는 영화의 상업적 성공과 미학적 성취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대중문화의 핵심적 가치이다.


송강호 장르가 보여준 진화과정의 궤도는 모든 영화 장르의 예술화 경지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송강호 장르의 세 가지 양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