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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Jul 23. 2020

장르가 된 배우, 송강호

본격, 송강호론 프롤로그..

장르, 배우, 송강호


특정 예술인이 곧 장르라는 말이 있다. 오랜 기간 대중의 곁에서 예술 활동을 펼쳐온 예술가를 칭송할 때 쓰는 문구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에 의하면 장르는 하나의 텍스트가 특정 장르에 속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코드 혹은 특성이다. 특정한 텍스트가 장르로 인식되려면 기존의 다른 텍스트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을 지녀야한다. 이 말은 하나의 장르가 독자적인 성질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여타 장르의 성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현대의 대중예술에서 모든 예술은 장르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발달한다. 세상에 없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 장르 체계에 기대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 장르를 경계하더라도 텍스트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수용자들에 의해 장르화되어 분류된다. 따라서 새로운 장르가 형성되기 위해선 장르의 체계에 위에서 발달하되, 독자적인 예술적 특성을 발현해야 한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어떤 예술인이 장르로서 인식되려면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에게 기존 장르에 의거하여 노출되고, 스스로의 예술적 특성을 각인시켜야만 한다. 또한 지속적인 관객과의 소통과정을 통하여 수정‧보완하며 발전해야 한다. 장르 연구가 토마스 샤츠(Thomas Schatz)는 장르를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한다. 관객은 장르의 고유한 특성을 요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창조를 기대한다. 관객이 장르에 기대하는 것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으로, 장르는 관객의 이중적 요구를 충족해야만 존속될 수 있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예술인이 장르가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하나, 여러 장르를 관통하면서도 본인만의 특성을 녹여내어 기존 장르 안에서 독창성을 구축해야한다. 둘, 오랜 기간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독자적인 특성을 지속‧발전시켜야한다. 셋, 예술인의 발전된 특성 혹은 예술성은 장르 안에서 결여된 부분을 충족시키거나 진일보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등 장르적 변주를 야기해야한다. 


이를 영화의 영역에 대입하여 설명하면, 영화인이 장르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의 여러 장르를 아우르면서 활동을 하되, 여타 장르 안에서 본인만의 특색을 나타내야한다. 만약 영화인이 특정 장르 안에만 머문다면, 그 장르의 대표적인 영화인으로 한정된다. 나아가 대중들과 오랜 시간 교감하며 독자적 특성을 특화해야 한다. 그렇게 장르가 된 영화인은 어떤 장르 영화를 하더라도 자체의 특색이 돋보이고, 기존 장르에 영화인의 예술성이 결합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영화인을 거론한다면,‘송강호’를  선정할 수 있다. 한국 영화산업에서 필모그래피에 천만 영화를 세 편이나 보유하고, 동시에 주연 작으로만 도합 1억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인은 송강호가 유일하다. 관객 동원력으로는 국내에서 경쟁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데, 송강호의 위상은 단순히 상업적 성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송강호는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하여 근 20여 년 동안 30여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등 한국을 대표하는 명감독들과 호흡을 맞춰왔고, 걷혀간 장르도 다양하다. 송강호의 주력 장르인 코미디를 비롯하여, 액션, 스릴러, SF, 멜로, 드라마 등 영화의 세부장르를 모두 아우른다. 여러 장르영화에 통달하면서 연기력까지 호평 받는 진귀한 영화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

더불어 송강호 만큼 광범위한 장르 영역 안에서 자신만의 확실한 개성을 부여하는 영화인도 드물다. 송강호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에는 페이소스가 공존하고, 그의 스릴러 영화를 보게 되면 독특한 유머에 웃음이 난다. 이러한 송강호만의 개성은 장르 영화의 공식과 융합하고, 장르적 쾌감 위에서 새로운 독창성을 현현하게 하여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송강호가 장르를 관통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송강호가 내놓는 최신작은 그대로 그의 대표작이 되는 놀라울만한 공적을 보여준다. 다른 배우들이 자신의 예술성에 갇혀 연기적으로 자기복제를 하고, 명감독들이 자신의 출세작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송강호는 예술성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와 명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사도>의 송강호


<변호인>에서 인권변호사로 분한 송강호는 분노의 사자후를 보여주며 연기의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속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후의 영화에서 결이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며 정점의 연기를 경신한다. <사도>에서는 실존 인물인 영조를 자신만의 톤으로 재해석하면서도 비정한 아버지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택시운전사>에서는 격동의 시대에 놓인 한 소시민의 영웅화를 격정적으로 보여준다. 뉴욕타임즈는 <택시운전사>의 송강호를 가리켜 평범한 근로자의 정치적 각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하여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평가한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송강호

이처럼 송강호의 연기력과 캐릭터 창출 능력, 즉 예술성은 지속적으로 진화해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장르를 아우르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본인의 예술성으로 영화를 완성하는 송강호라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관객, 제작자, 비평가 모두에게 신뢰를 받는 한국 영화계에 현존하는 최고의 장르일 것이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의 얼굴에는 시대의 풍경이 있다고 말한다. 송강호 장르는 이제 장르적 쾌감을 넘어서, 시대의 분위기를 체험하게 하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성질로 태동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가장 독특하면서도 대중성을 무장한 새로운 괴물 장르의 탄생을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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