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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Jul 29. 2020

장르가 되는 연기의 조건

송강호 장르론 두번째.

메소드 연기 대 재현적 연기


송강호 장르를 규정하려면 먼저 송강호 장르의 핵심인 그의 예술성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송강호 장르의 고유성은 송강호의 독특한 예술성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배우 예술성의 원천은 연기력이다. 따라서 송강호가 작품을 통해 보여준 연기를 중심으로 그의 연기관과 연기스타일을 고찰하며, 그의 예술성을 도출할 수 있다. 


송강호는 속칭‘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다. 물론 배우를 바라보는 관점마다 혹은 분석가의 기준에 따라서 논쟁이 있을 순 있지만, 나의 관점에서 송가호는 메소드형 배우는 아니다. 메소드란 배우가 극중 역할의 내면적 진실에 도달하고, 극중 상황을 믿게 만들어서 살아 움직이는 복합적 존재로서 극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연기 방법이다. 메소드 방법을 통해 극중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는 극중 인물의 내면에 다가가 그 인물과 완전하게 동일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메소드연기 창시자 스타니 슬랍스키(좌), 대표적 메소드형 배우 말론 브란도(우)


메소드 연기 이론에 발단이 된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y)의 초기 논의를 보면 ‘배역의 생활화’라는 심리 기술이 등장한다. 배우는 연기를 행하는 매번, 매 순간, 배역을 생활해야한다는 것이다. 배우가 배역을 생활해야 인간의 정신적 삶을 창조할 수 있고, 배역의 삶에 온전히 빠져들어 무대 위에서 매 순간 신선함을 발휘할 수 있다는 원리다. 

배역의 생활화

배역의 생활화를 실천하는 배우는 극중 인물에 관하여 장기간 탐구하고, 인물이 직면한 상황과 유사한 경험을 실제로 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찰 배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 경찰 조직에 들어가 업무를 체험하거나, 희귀병에 걸린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체중을 급감하기도 한다. 슬랍스키는 배역의 생활화가 메소드 연기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설명하며, 극중 인물의 삶을 생활하는 배우들을 최고로 평가한다. 


한편 슬랍스키는 다른 유형의 연기 방법인 ‘배역의 재현’도 거론한다. 배역을 재현하는 방식은 배우들이 배역을 창조하여 모든 특징들을 자기 자신에게 옮겨놓는 것이다. 재현파 배우들에게는 극중 배역의 삶을 찾아서 생활하는 것보다, 극중 배역의 삶을 창조하여 그 특징들을 자신이 체화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배역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배우 실제의 영혼과 정서, 그리고 삶의 행위들을 활용한다. 재현파의 입장에서 배우는 배역을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배역을 연기하는 것이다. 


슬랍스키는 재현적 연기에는 연기의 아름다움이나 페이소스만 있고 심오한 인간의 감정은 완전히 배역의 삶이 된 배우에게만 나타난다고 설명하며 메소드 연기를 더 우위에 둔다. 개인적으로 나는 두 유형의 연기 방법에 우위를 두는 것에 비판적이다. 두 유형의 연기 방법이 완전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배우에게는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모든 배우는 배역에 삶을 모방하려는 접근을 시도하고, 배역이 되려고 노력하고,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위해 연기한다. 

배우와 배역이 만나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하는 과정

연기 작업은 배우와 배역이 만나 대화하고, 상상하고, 융화되며 새로운 존재물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자연인으로서의 배우의 개성, 세밀한 연기 기술, 상대 배역과의 앙상블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연기 유형은 달라진다. 관점과 방법의 차이지 우열에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장르가 되는 배우의 현상에 있어서 연기적인 조건은 있을 수 있다. 앞서 장르는 고유의 특성이 존재한다고 설명하였다. 배우가 장르가 되려면 배우만이 갖고 있는 특성 혹은 이미지 등이 있어야 한다.


조안 홀로우즈(Joanne Hollows)에 의하면 스타의 이미지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지닌 일련의 기호들에서 생겨난다. 영화배우는 영화의 내러티브 혹은 작중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적 기호들에 의해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영화를 통해 기호들이 생산된다고 한들 영화 속에서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면, 드러난 기호들은 온전히 영화 안에만 머물게 된다. 영화가 만들어낸 기호들은 배우의 것이 아니라 작품 혹은 작중인물의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배우가 자신을 관객에게 인식시킬 수 있을 때, 영화가 만들어낸 특정한 이미지는 배우에게 덧입혀질 것이다. 이렇게 켜켜이 쌓인 기호들은 그 배우의 특성이 되고, 나아가 장르가 되는 요소로서 특정한 양식으로 발전될 수 있다. 즉 장르가 되는 연기술은 메소드가 아닌 재현적 연기이다. 메소드형 연기는 배우보다는 배역만을 남기기에, 배우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송강호의 연기술, 내면적 연기


송강호는 슬랍스키가 경계 짓는 두 유형의 연기 방법 중 어디에 속할까? 연구자의 나의 관점으로는 재현형 배우에 더 가깝다. 송강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영화 속 배역의 삶도 보이지만, 그만큼이나 송강호의 개성이 보인다. 영화의 배역마다 송강호의 개성은 다른 비중으로 섞이지만, 분명 송강호가 연기하는 배역에는 자연인 송강호의 개성이 묻어난다. 여기서 자연인 송강호의 개성이란, 스크린을 통해서 형성된 송강호의 특정한 성질 혹은 이미지다. 


메소드 연기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좋은 방법은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속 배역이 보이는지, 아니면 연기한 배우가 보이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메소드 연기는 배우보다 영화 속 배역이 더 선명하게 보여야 한다. 송강호의 영화를 보고나면 작품 속 인물도 분명히 생각나지만,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도 확실하게 각인된다. 송강호의 개성이 배역에 융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사투리가 섞인 억양, 무심히 툭 던지는 말투, 넉살 좋은 웃음, 인간적인 인상, 유머스러움, 페이소스 등등. 송강호만의 작은 개성들이 모여 특유의 늬앙스를 만들어내고, 이는 작품의 배역을 만나 효과적인 화학작용을 일으켜 배역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메소드가 만들어내는 생동감하고는 결이 다른 지점이다. 이는 슬랍스키가 말하는 재현형 배우와는 또 다른 성질이라 할 수 있다.


송강호만의 개성과 연기 늬앙스


김영진은 송강호는 어떤 역할이든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 내고, 직업, 계층, 성격의 맞는 인물에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고 설명한다. 송강호의 연기 늬앙스는 인물성과 극중 상황이 모두 다른 인물들을 표현하는데 적절하게 사용되고, 어느 배역이든 송강호화한다. 송강호는 배역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많이 활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기 방식은 우타하겐(Uta Hagen)이 주장하는 ‘내면적 연기’방식과 유사성을 보인다. 우타하겐은 슬랍스키가 말하는 나 자신을 버리고 완전히 배역의 영혼이 되는 방식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배우의 영혼을 그대로 드러낼 것을 주장한다. 예술가로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우타하겐은 자신의 영혼을 배제시킨 채 등장인물의 행위를 도해하는 것은 관객과의 정서적 교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말한다. 


무대 위에 배우의 영혼이 완전히 제거된 채 오로지 배역의 행위만 있다면, 배역의 행위는 보일 수 있으나 인간적 교감은 느끼지 못한다. 즉 메소드 연기는 관객의 감탄은 자아낼 수 있어도, 배역과 관객의 심리적 거리는 멀게 하는 것이다. 배우가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며 적절하게 인물에 가미했을 때, 관객은 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우타하겐은 배우가 배역을 표현할 때 자신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고, 자신의 자원을 통해서 배역에 다가가는 것을 강조한다.


“배우는 자신의 고유한 정체감을 찾고, 자기인식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에 어떻게 사용할지 그 방법도 배워야 한다.”


자연인으로서 배우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자신의 영혼을 통해 배역을 창조하고,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배역을 표현해야한다. 배우와 배역이 융화된 연기는 관객이 배역의 삶을 보면서도 배우의 개성을 통하여 형성되는 친밀감으로 배역과의 정서적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송강호의 연기관도 우타하겐의 연기론과 일맥상통하다. 


노력은 뭔 노력을 해요, 그냥 현장에 가는 거지!

송강호는 배역을 창조하는 작업과정에 대하여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현장에 간다고 말하며, 자신의 연기 접근법을 밝힌바 있다. 송강호의 연기는 촬영현장, 즉 극중 상황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자신의 영혼이 반응하는 대로 직감적으로 표현하는 스타일이다. 또한 송강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그 안에서 송강호 본연의 성질과 연결지점을 찾고, 이전에 자신이 연기한 모습들이 녹아들 수밖에 없음을 피력한다.


영화 <괴물>의 촬영 현장(좌), 영화 <택시운전사> 촬영현장(우)


이러한 송강호의 연기 스타일은 우타하겐의 연기 접근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송강호는 캐릭터를 창출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지닌 자원을 활용하며, 그렇게 연기한 캐릭터들은 자연인 송강호로부터 발현되는 동일한 요소를 지니게 된다. 관객은 배우 송강호가 발산하는 인간적이고 친근한 개성들로 인해, 그가 표현하는 캐릭터들과 정서적 교감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현실성이 결여된 인물이나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물도 송강호를 만나면, 관객의 이해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이다.

 

영화 속에서 배역 너머로 배우의 존재감을 발현하는 송강호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특정한 기호, 이데올로기, 양식 등을 흡수하게 된다. 자신의 개성을 활용하여 내면적 연기를 펼치는 송강호의 연기 스타일, 즉 예술성은 그가 장르가 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비로소 송강호는 배우 자신의 개성과 영화가 부여하는 특성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장르로서 고유한 양식을 부여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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