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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Apr 13. 2018

여행에 관한 소소한 생각

#1. 입국심사대 앞에서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때였다.


2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직원 중에 한 명을 뽑아 해외로 보내주는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운이 좋게 내가 당첨되었다. 그동안 일본만 가던 관행을 깨고 나는 런던을 선택했다. 당시 출판계는 일본식 디자인이 인기였지만 나는 일본의 미니멀한 디자인보다는 선이 굵고 모던한 영국식 디자인에 끌렸다. 비용 문제로 회사에서는 탐탁해하지 않았으나, 비행기 삯만 지원받고 체류비용은 자비로 부담하는 조건으로 간신히 허락을 구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린 나는 난생처음으로 입국심사대 앞에 섰다. 사전에 영국의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한 자세로 심사원인 여자와 눈싸움이라도 하듯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반짝반짝 빛을 내면서 바라보았다. 내가 범죄자가 아닌 선량한 세계시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큰둥한 표정의 심사원은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면서, 내 입국카드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약점을 발견했는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내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 짐작컨대 “이거 네가 쓴 거 맞니?”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웃었다. 아니, 웃었다기보다 비웃는 게 맞았다. 


그녀는 옆에 있는, 그러나 거리가 떨어진 다른 통로의 심사원(그도 여자였다)을 불러 내 여권과 내 카드를 보여주었다. 뒤에 서서 입국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모두 불안과 근심,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더러는 저 작고 볼품없는 동양인이 설마 해외도피자이거나 국제사범이 아닌지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내 여권과 입국카드를 건네받은 심사원은 매우 신중한 여자였다. 적어도 표정만큼은 그랬다. 그녀는 나를 힐긋 보더니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너 머리가 아픈 건 아니지?”하고 물었다. 나는 무척 순수한 사람이라 그 질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몸이 아프면 입국이 불허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건강합니다.”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어떤 결론을 내리고 내게 말을 건넸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네가 그 유명한 가수란 말이지?”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가수? 웬 가수? 도대체 그들이 나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내 입국심사원은 조롱하듯이 “어디 노래 좀 불러보지 그래?”하는 거였다.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거 좋겠군” 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무료하기만 하던 입국장에 한순간 생기가 감돌았고 어떤 사람들은 기대감에 술렁댔다. 


가창력에 따라 입국을 허가하는 제도가 실행된다면 몰라도. 공항에서, 그것도 입국심사 중에 노래를 부른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다. 하물며 비틀즈라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옆에서 건너온 심사원은 내 입국카드를 흔들면서 “너 가수라며?”하고 부추겼다. 나는 그녀가 내민, 내 손으로 직접 쓴 입국카드를 보면서도 뭐가 잘못됐는지 알지 못했다. 

“정말 싱어 맞아?”


그녀가 직업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비로소 뭐가 잘못됐는지 눈에 보였다. 내 직업란에 desinger라는 글자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분명히 내 글씨체였다. 나는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 


Designer라고 정정했으나, 그들의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네가?’ 하는 눈으로 내 옷차림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이런 촌스러운 녀석이 디자이너라고? 하는 눈치였다. 에디토리얼라는 설명을 들은 뒤에도 그들은 나의 직업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떠듬떠듬 손짓 발짓해가며 설명한 후에야 겨우 입국장을 나설 수 있었다. 심사원은 내게 어디 묵을 거냐? 돌아갈 티켓은 있느냐? 묻지 않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동양인이 불법체류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다만 그녀는 내 여권에 도장을 꽝 찍으면서 “영어나 공부하고 돌아다니지 그래.”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사원의 그 말은 한 제국주의자의 비난이 되어 가슴에 못을 박았다. 영어가 서투른 동양인을 상대로 조롱한 그들이 괘씸했다. 약소 국민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었다. 나는 여행을 다녀온 뒤 새로 산 영어책을 덮어버렸다. 외교 당국자에게 정식으로 항의서한을 보낼까 하다 어떻게 보내는지 몰라서 포기했다. 나는 간디가 아니었다. 


이후, 수많은 나라의 입국심사대 앞에서 얼어붙는 나를 종종 발견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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