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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May 08. 2018

Tuc

베트남에서 내가 잘 가던 단골집 직원 중에 나를 좋아했던 녀석이 있었다. 


이름이 ‘툭’이라는 아이였는데, 당시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다. 나만 가면 좋아서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음식을 먹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녀석은 내 쪽을 보고 싱긋이 웃고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엔 아내를 향한 연정의 눈길인가 싶어 기분이 언짢았으나, 그 눈이 나를 향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 후로 그 식당만 가면 아내는 부러 나를 놀리곤 했다. 그래도 녀석 덕에 공짜로 얻어먹은 것이 꽤 있었다. 그가 남모르게 땅콩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것을 집어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없어도 남자들에게는 제법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방콕과 푸켓에서 난리였다. 파타야에서는 버젓이 아내와 함께 있는데도 여장한 남자가 다가왔다. 놀란 나는 아내의 손을 움켜잡았지만 상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농염한 눈으로 나를 어루만지면서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나의 모든 상상을 현실로 구현시켜줄 수 있다는 듯이 그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파타야에 있는 동안 매일 밤마다 벌어진 일이었다.

동양인 남자만 내게 관심을 보인 건 아니다. 결혼 전, 그리스의 미코노스 섬에 혼자 갔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어느 건장한 프랑스인이 내게 호감을 보였다. 서양인이 동양인에게 인간적으로 호감을 보인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그의 외형이 문제였다. 그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망사 스타킹 사이로 다리털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곧 터질 것처럼 보였다. 하얗게 분 바른 얼굴과 립스틱을 바른 입술 위아래로 수염이 가득했다. 그는 내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지, 또 어디에 묵는지 관심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그가 내게 “넌 무슨 색이 좋아?” 하고 물었을 때였다. 


이런 제길. 여자도 아닌 남자가 내게 색감 따위에 대해 묻다니. 물론 나는 디자이너이므로 색에 관해, 그런 식의 질문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는 예외였다. 나는 갑자기 무슨 큰일이 일어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피했다. 중년의 그 아저씨는 민소매 사이에 드러난 겨드랑이 털을 흔들면서 아쉬운 얼굴로 나를 떠나보냈다. 미코노스 섬에 있는 동안 그 식당 근처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며칠 뒤, 크레타 섬으로 떠나는 대합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말을 붙이지 않았지만 내게 지그시 미소를 보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화장기가 사라진 그는 멋진 슈트를 입고 있었다. 영락없이 중후한 중년의 신사였다. 그는 다른 일행과 함께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가 어떤 휴가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 나는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다.


다시 방문한 단골집에 ‘툭’이 보이지 않는 건 어쩐지 아쉬웠다. 그도 이제 30대 중반을 훌쩍 넘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베트남이 우리나라보다 동성애에 대해 관대한 건 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2015년에 베트남은 동성결혼 금지법 조항을 폐기했다)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화장한 남자, 화장은 하지 않았으나 여성성을 숨기지 않는 남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한 잡화점의 점원이 그랬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이상했을 그 사람의 행색이 베트남에서는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인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종잇장처럼 얇은 것인지 새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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